[한경에세이] 대학+도시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
오래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처음 방문했을 때, 기억나는 것 두 가지. 교문을 찾아볼 수 없었고, 지하철역 이름이 MIT역이 아니었다. 인근의 하버드역을 나오자마자 고풍스러운 교문이 보였던 것과는 대비됐다. 보스턴에 지하철이 한창 건설되던 20세기 초만 해도 MIT가 평범한 대학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 대학은 2차 세계대전 때 정부의 지원과 연구개발에 힘입어 레이다 등을 개발하며 순식간에 도약한 곳이다. 대학과 도시가 어우러져 24시간 약동하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교문이 굳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다.

최근에 QS 세계대학평가에서 10위권으로 점프한 중국 칭화대와 베이징대는 베이징 고도(古都)에서도 오래된 지구에 있다. 이곳의 상당 면적은 문화재 앙각 등을 이유로 3층 이하로 건축허가가 나는 곳이었는데, 베이징시는 이를 과감히 풀었다. 두 대학은 인근 중국과학원과 함께 짧은 시간에 중관춘이라 불리는 창업타운의 중심이 됐고, 신기술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칭화대 교문에 들어서면 구글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고층 오피스부터 보인다.미국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뉴욕시와 함께 인근 몇 개 블록을 개발해 바이오 기업과 연구기관을 모아 맨해튼빌이라 명명했다. 뉴욕시는 오랫동안 버려졌던 루스벨트 섬에도 코넬공대를 유치해 연구와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둘은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뉴욕앨리의 핵심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 대학은 오랫동안 도시 내의 섬이었다. 높은 담장 속의 상아탑은 속세와는 다소 거리를 둬야 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지금도 그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지만, 베이징과 맨해튼의 사례는 일자리와 기술을 창출하는 창업 도시의 힘이 대학에서 나옴을 보여준다. ‘대학+도시’가 도시경쟁력의 원천임은 명확하다.

우리 도시에도 대학이 많다. 보스턴이 40여 개의 대학을 보유하고 브레인시티(Brain City)라고 홍보하지만, 서울에는 60여 개의 대학이 있다. 개수만 많은 게 아니다. 서울 시내 대학 부지만 합쳐도 분당만큼 면적이 나오고, 거점 국립대 중 7곳의 면적이 130만㎡를 넘는다. 전국의 국립대 부지를 합치면 1억3200만㎡ 이상이다. 일산신도시 9개가 들어갈 수 있다. 비수도권의 많은 대학이 폐교를 걱정하고 있지만, 대학 부지는 토지조성 및 상하수도, 전기 등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곳이다. 저비용으로 산업과 주거를 유치할 수 있다. 물론 젊음과 두뇌도 넘친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조건을 가진 곳들을 교육의 눈으로만 봐왔고, 도시 내의 섬으로만 대해왔다. 21세기도 4분의 1이 지나갔다. 이제는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