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아야죠"…매일 새벽 6시 '대치동' 향하는 50대 정체 [대치동 이야기⑩]

강동훈 강남종로학원 국어 강사
수험생만큼 눈코 뜰 새 없는 학원강사의 삶
"현장 강사만의 경쟁력 갖춰야 살아남아"
의대반에서 문학 수업을 하고 있는 강동훈 강사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매주 월요일 대치동 교육 현실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대치동 학생들 워낙 학원 문화에 익숙하잖아요. 어설프게 가르쳤다간 이 동네서 살아남지 못하죠."지난 3일 오전 6시에 방문한 강남구 대치동 소재 강남종로학원 남학생관. 6층짜리 건물 전체가 재수 종합 학원으로 쓰이는 곳이다. 학생들은 매일 오전 7시 50분까지 등교하면 되지만, 강사들은 그보다 2시간가량 앞서 건물에 들어선다.

15년째 대치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강동훈(50) 선생은 이 학원에서 '의대반' 담임 역할을 맡고 있다. 강 선생은 "매일 6시에 출근한다"면서 새벽부터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하는 이유

6:00~7:00 교재 연구 및 수업자료 준비
7:00~7:30 아침 0교시 미니 모의고사 자료 준비 및 시간표 게시
7:30~8:10 오전 조회. 출결 확인 및 미니 모의고사 감독

학생들이 등원하기 전까지 강 씨가 해야 할 일이다. 그는 "지금이 아니면 수업 자료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며 분주히 교무실과 복사실을 오갔다.강 선생은 수능 국어 중 문학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수업 자료로 활용할 문제지에 손글씨로 일일이 작품을 분석한 내용과 핵심 포인트를 써 내려갔다.

그는 일찍 등원하는 학생을 위해 교실 앞에 '0교시 미니 모의고사'를 비치해두고, 학생들을 맞이했다. 7시 20분께 교실에 일찍 도착한 학생에겐 그날의 컨디션이나 과목별 공부 진행 상태를 묻고, 준비해둔 모의고사 시험지를 건넸다. "선생이 일찍 와야 아이들의 컨디션을 일일히 확인하고 맞이할 수 있어요. 재종반(재수종합반) 담임은 웬만한 체력의 소유자 아니고선 오래 못 합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강동훈 강사가 모의고사 시험지를 준비하는 모습과 직접 제작한 문학 작품 자료. 오전 7시 40분께 학원으로 등원하는 학생들. /사진=김영리 기자
오전 7시 50분. 학생들이 휴대폰을 1층 출입구에 반납하고 교실로 올라갔다. 아슬아슬하게 등원을 마친 학생을 끝으로 의대반 수강생이 모두 착석했다. 학습계획서를 정리하거나 영어 듣기 모의고사를 풀면서 저마다 알차게 오전 시간을 활용했다.오전 8시 20분에 1교시 종이 울렸다. 담임인 강 선생의 문학 수업이 1교시에 배치된 날이었다. 이날은 오장환의 '성탄제'와 박남수의 '새'라는 작품을 비교·분석했다. 월요일 아침이라 졸릴 법도 한데 그가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작품 속 단어의 상징적 의미를 묻자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바로 질문에 답했다.

'의대반' 담임, 어떤 점 다를까

강동훈 강사가 학부모와 소통하고 주간 학습계획서를 확인하는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의대반을 맡는 강사에게 중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관리'다. 그는 "어떨 땐 학생보다 학부모와 소통하는 시간이 더 길다"면서 1교시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주간 학습계획표를 걷기 시작했다. 이날 그는 1교시와 3교시에 수업이 있었다. 2교시와 4교시 공강 시간에는 학생들의 학습계획표를 검사하면서, 학생별로 순 공부 시간과 과목별 공부 시간 등을 확인했다. 그는 개개인의 진도와 이전 주와 비교해 달라진 공부 패턴 등을 파악해 학부모에게 주간 학습계획표 요약본과 주간에 치른 미니 모의고사 성적을 촬영해 보낸다.

"과거에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국어가 약해요'라고 말했다면 요즘엔 '우리 아이는 문학 중에서도 고전시가 문제만 자꾸 틀려요'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합니다. 1~2문제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학생의 사소한 변화도 눈치채야 하는 것이 담임의 몫이지요."

강 선생은 "특히 의대반 친구들은 현역 성적으로도 '인서울' 대학 진학이 가능한 학생들"이라며 "절대적인 지식이 부족해 대학에 못 간 것이 아니기에 재수 동안 헷갈리는 개념 등 개인의 취약점을 다듬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재수 종합반 최신 트렌드는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강남종로학원의 경우 올해부터 대치동 휘문고 앞에 있는 건물은 남학생관, 교대역 인근에 있는 건물은 여학생 전용으로 성별을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재수 생활 중 혹여 이성 교제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를 소홀히 할까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선호한다는 후문이다.

'의대'·'메디컬(치대, 한의대, 수의대)'·'서성한' 등 목표로 삼는 대학이 각 반의 이름이다. 남학생관의 경우 9개 반에서 '2025 수능'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끝나면, 반수를 결심한 학생들이 있어 반이 2~3개 더 생긴다.

학생들이 성적 기준에 따라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매월 지불하는 비용은 평균 250만원 선이다. 주말에 1시간씩 늦게 등원하는 것 외에는 매일 오전 7시 50분부터 오후 9시 50분까지 밀착 관리를 받으면서 수험 생활을 이어 간다.

'수업은 줄이고, 관리와 콘텐츠는 늘리는 것'이 요즘 재수 종합학원의 트렌드다. 최민병 남학생관 부원장은 "인강(인터넷 강의)이 보편화되면서 재수 종합반들이 과거 저녁 식사 전까지 운영하던 강의식 수업을 점심 식사 전까지인 1~4교시로 확 줄였다"며 "추가로 개념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오후에 특강을 듣지만, 수업 시간을 전체적으로 줄여 학생들의 개인 공부 시간을 늘린 것이 요즘 재수 학원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원장은 "콘텐츠는 매일 오전에 보는 미니 모의고사나 강사별 자체 수업 자료를 의미한다"며 "인강 강사가 제공하는 문제도 학생들이 질문할 수 있기 때문에 강사들이 항상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강사만의 차별점 찾아야

평일 오후 질의응답 시간. /사진=강동훈 강사 제공
점심시간을 마치고 오후 1시부터는 태블릿 PC 등 인강에 필요한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1시부터 4시까지는 선생님들끼리 교대로 자습실을 감독하고 질문 창구를 운영한다.

강 선생은 이날 오후 2~3시까지 학과 질문을 받았다. 교무실에 국어 문제를 들고 오는 학생을 한명씩 앉혀두고 질문을 해결해준다. 그는 "김승리·유대종·강민철 등 국어 영역 인강 일타 강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문제도 질문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또 "'간쓸개'나 '김봉소'와 같은 국어 모의고사형 문제집도 인기"라며 "이 문제들을 모두 풀어보고, 분석해둔다"고 설명했다.

오후 4시 30분이 되면 종례 시간을 갖는다. 개인 사유로 저녁에 외출하는 학생이 있다면 학부모에게 알리고, 내일 시간표와 일정 등을 공유한다. 저녁 질문 당직이나 특강이 없는 평일엔 오후 5시께 퇴근한다. 저녁에는 인근 학원가 혹은 수도권의 자율형 사립고로 출강한다.
강동훈 강사가 논술학원에서 제자를 지도하는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8일 오전 양천구 목동의 'ㅁ' 학원. 대치동 소재 'ㅁ' 학원의 분원. 그는 이 곳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시 논술 대비 특강 수업을 한다.

논술 수업의 경우 개별 학생마다 목표로 삼는 대학이 달라 학생마다 다른 대학의 논술 기출 문제를 풀고 있으면, 강 씨가 돌면서 일대일 지도를 한다. 최근 대치동에서 인기인 수업법이기도 하다.

정시로 단국대 특수교육과에 합격했지만, '중경외시' 대학의 미디어학부를 진학하고 싶어 반수를 택했다는 정모 씨(20)는 "의대에 도전하는 재수생이 늘어, 수능에서 1~2등급을 따는 것이 더욱 힘들 거라 보고 있다"며 "반수지만 학생부교과전형과 논술 전형을 함께 준비해 정시 부담을 덜고자 논술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훈 강사는 "점점 칠판 쓸 일이 없어지는 것을 체감한다"며 "입시 사교육 현장에선 인강이 할 수 없는 '1:1', '소수정예', '과외식'과 같은 키워드가 대세가 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끊임없는 수업 준비와 입시 제도 분석 없이는 강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대치동"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에도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도 심화하고 있습니다. 다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은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대치동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해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대치동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스템을 모르면 한국 교육의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치동이 어디인지, 대치동의 왕좌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학부모, 강사들의 삶은 어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치동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거나 포털에서 [대치동 이야기]로 검색하면 더 많은 교육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