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와 연대" 제안 당대표 제명…최악 위기 봉착한 佛공화당

여당에서 '5위정당' 몰락한 佛공화당
에릭 시오티 프랑스 공화당 대표가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공화당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중도우파 공화당이 에릭 시오티 당대표를 전격 제명했다.극우 성향 국민연합(RN)과의 연대를 추구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한때 프랑스에서 양당체제의 한 축을 구성하던 공화당에서 정치 노선을 둘러싼 내홍이 이어지며 사상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랑스 공화당은 이날 시오티 대표를 만장일치로 해임했다. 시오티 대표는 자신의 제명을 막기 위해 당사를 폐쇄하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날 아침 당 대변인직을 사임한 빈센트 장브륀은 “시오티가 독재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고, 결국 공화당 집행부는 인근 건물에 모여 만장일치로 제명을 의결했다.공화당이 당대표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시오티 대표가 극단주의 정당과 연대하지 않는다는 당의 금기를 깼다는 판단에서다. 시오티 대표는 전날 TF1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을 유지하면서 RN과 동맹을 맺어야만 한다”며 “RN과의 연대가 대다수의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RN을 창당한 마린 르펜 원내대표와도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내홍은 격화되고 있다. 제프로이 디디에 당 사무총장은 “시오티 대표를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했고, 2022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도 “시오티는 영혼을 팔았다”고 맹비난했다. 반면 시오티 대표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는 여전히 당 대표”라며 “당 위원회 결정은 명백하게 프랑스 법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27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 BFMTV에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공산당(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극좌), 공화당(중도우파), 레콩케트(극우), 사회당(중도좌파), 국민연합(극우), 르네상스당(중도), 유럽생태당(좌파) 후보./ AFP연합뉴스
문제는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전까지 공화당은 사회당(PS)과 함께 프랑스의 양당체제를 구축하는 정당으로 꼽혔다.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샤를 드골의 후신격으로 자크 시라크·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배출했다. 공화당은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패하며 정권을 내줬다.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에 패한 것은 물론 RN에 지지층을 빼앗기며 결선투표에도 오르지 못했다. 공화당은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7.25%의 득표율로 5위에 그쳤다. ‘당 대표 제명’의 충격파는 오는 30일 치러지는 프랑스 조기 총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RN은 이번 총선에서 235~265석을 얻어 단독 과반(전체 577석 중 289석)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공화당의 예상 의석 수는 40~55석으로 RN과 연대할 경우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우파 공화당과 중도좌파 사회당 등과 연대해 중도연합으로 RN을 이기는 구상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공화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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