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의 인생찬가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

알바니아 출신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산문집
프랑스 파리 중심가 뤽상부르 공원의 맞은 편 오데옹 구역에는 '르 로스탕'(Le Rostand)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카페가 있다.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이름을 딴 이 카페는 프랑스의 유명한 문인과 지식인들이 드나들면서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고, 파리가 배경인 프랑스 영화들의 단골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다.

이 카페가 또 한 번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계기가 있다.

알바니아 출신으로 프랑스로 1990년대 초반 망명해 작품 활동을 해온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이 카페의 이름을 딴 책을 내놓으면서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알바니아의 거장 카다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산문집이다.

'부서진 사월', '죽은 군대의 장군', '누가 후계자를 죽였나' 등 그의 소설 대다수가 국내에 출간됐지만 에세이집은 처음이다.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면서 암울했던 조국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내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카다레가 거장의 무게를 잠시 벗어두고서, 자신의 지극히 사적이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담백하게 담은 책이다. 프랑스학술원(아카데미프랑세즈)이 제공하는 주거 혜택을 부탁하러 가면서 특별한 선물로 권총을 가져가 대화 상대를 아연실색하게 한 이야기, 뤽상부르 공원 근처를 산책하면서 종종 마주친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2014년 노벨문학상)와의 소심한 만남 이야기, 카페에서 옆자리 여성들이 나누는 알쏭달쏭한 얘기에 신경이 쓰여 글을 쓰지 못했던 일화, 고교 때 첫 원고료를 받고 친구들과 처음 카페에 갔다가 정치 소동으로까지 번진 일 등 작가의 위트 넘치는 글은 종횡무진 이어진다.
책 제목에도 언급하면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뜻을 표한 것처럼, 작가의 '카페 로스탕' 사랑이 특히 정겹다.

매일 아침이면 집 근처의 이 카페로 나가 오전에 집중적으로 글을 썼던 카다레는 이곳에서 만난 그리스 영화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역시 알바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 등 여러 예술인과의 교류를 유머러스한 필치로 적었다. 카레 로스탕을 작업실 삼았던 이들의 투쟁 아닌 투쟁기도 그렇다.

"먹물들(다시 말해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기자, 작가, 학생들)은 그 장소에 엘리트의 랑데부라는 일정한 아우라를 부여했지만, 동시에 장시간 죽치고 앉아 그곳의 경제적 수익성을 해쳤다.

그렇다고 그런 사실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는 법. 전쟁의 목적은 먹물들을 내쫓지 않고 제 발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그들이 군소리 없이 스스로 자리를 떠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
카페 주인과 '먹물들' 사이의 쫓고 쫓기는 전쟁은 결국 카페 주인이 바뀌면서 먹물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종업원들이 얼빠진 눈길로 지켜보는 가운데 먹물들은 그들 꿈에 숱하게 등장했던 그 카페 안으로 하나둘 들어섰다.

그리고 늘 앉던 자리, 중앙 구역과 서쪽 날개를 나누는 운명적 경계에 놓인 자리, 그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했던 7번 테이블, 마지막 커피를 마신 자리를 찾아 앉으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

"
공부하거나 일하기 좋은 카페의 한 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을 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그래서 카다레는 카페 로스탕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적는다.

"언젠가 카페 로스탕에 관해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게 너무 익숙해져서, 처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날짜를 특정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생겨났는지 기억해낼 수가 없다.

그곳은 뉘우침과 고마움이 뒤섞인 감정이랄까, 늘 곁에 있지만 우리의 관심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혹은 그런 것으로 보이는 일생의 동반자를 향해 느끼는 감정을 떠올린다.

"
카페 로스탕에 대한 작가의 이런 마음은 곧 공산주의 독재 치하에서 억압받던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파리의 지성계에 대한 헌사일 것이다.

기자도 파리특파원으로 일하던 때 창밖으로 뤽상부르 공원이 한눈에 보이던 이 카페를 가끔 찾곤 했다.

지금도 그 한쪽에선 아흔을 바라보는 카다레가 무언가를 골똘히 쓰고 있을 것만 같다. 문학동네. 백선희 옮김. 4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