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고민하다 다 죽네 …연극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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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햄릿'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은 단순하지만 진득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선왕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 클라디우스 왕에게 복수한다. 쉽게 말하면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연극계 원로배우와 젊은 피 한데 모인 공연
단순한 무대와 이야기를
재치넘치는 대사와 연기력으로 채워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9월 1일까지
작중에 대단한 사건이 팡팡 터지지도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며 작품 내내 고민만 한다.답답하지만 그 모습에 존재와 죽음에 대한 진한 고민이 담긴 철학극이다. 지난 9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그 매력을 가장 진득하게 보여준다.무대는 거의 비어있다. 반투명한 거울만이 서 있다. 인물들이 모습이 반사되다가도 죽은 자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유리창이 되기도 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겹쳐 보이는 장치가 된다. 의상도 무채색에 장식 하나 없다. 인물 외의 요소들을 최대한 덜어내 대사에 집중하게 한다.
그 빈 자리를 배우들의 존재감으로 채운다. 24명의 출연진의 도합 경력만 900년. 이호재, 김무송, 박정자 등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묵직하다. 그들의 존재감이 각 인물이 느끼는 고뇌에 더욱 절실하게 빠져들게 한다.원로 배우들의 기세 못지않은 젊은 배우들의 열연이 놀라웠다. 지난 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햄릿 역을 맡은 강필석. 엄청난 대사량과 극적인 감정 연기에도 힘이 빠지는 구간 없이 애절함과 분노가 객석에 전해졌다. 오필리아를 맡아 연극 무대에 데뷔한 루나가 보여준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설레는 감정에서 시작해 아버지를 잃고 광기에 빠진 폭넓은 감정 연기를 충실히 해냈다.
▶▶▶[인터뷰] '햄릿' 무대에 선 배우들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셰익스피어 특유의 비유 가득한 대사가 휘몰아친다. 원작의 시적인 매력을 지키면서도 현대 관객의 귀에 너무 어색하지 않도록 적절히 풀어내 어렵지 않게 들린다. "장례식 때 준비한 고기가 식기도 전에 결혼식이 올렸다"고 같은 대사에서 느껴진 재치가 재밌다.마냥 침울하고 어둡지만 않다. 남명렬이 분한 폴로니어스가 선보이는 유머도 감초 같다. 오필리어에게 사주팔자를 말하는 등 작품과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한국 관객의 귀에도 익은 유머가 가볍고 재치 있다. 햄릿이 실수로 폴로니어스에게 총을 쏘자. "왜 나를..."이라고 외마디 비명을 외치며 죽는 장면.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선사하고 떠난다. 비극적인 상황에도 터지는 현실적인 대사에 웃음이 나온다.
레어티즈를 연기한 이충주와의 검술 장면도 인상적. 칼을 서로 부딪치는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펜싱 경기처럼 빠르게 치고받고 스텝을 밟아 긴박했다. 개막 직후라 몇몇 동작에서 조금은 합이 어색한 장면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현실적이고 느슨하지 않아 놀라웠다.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엄청난 대사량을 쏟아내 집중력이 필요한 작품. 화려하거나 긴박감 넘치지는 않지만 한 번 그 늪에 빠지면 마치 관객이 몸소 가족과 한바탕 다툰 듯 기진맥진해진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에서 9월 1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