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잘 지내고 있어”… 이중섭도 가족이 그리운 기러기였다

서울 종로구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중섭, 태현에게 보낸 편지, 1954년 10월 28일
“태현, 태성에게. 아빠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평범한 한 가장이 만날 수 없는 두 아들에게 보낸 애끓는 안부 편지다. 아빠는 잘 지내고 있다며 안심시키기고자 하는 마음과, 또 보고 싶은 그리움을 눌러 담은 편지. 이 글을 쓴 주인공은 황소 그림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국민 화가’ 이중섭이다. 이중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두 아들과 아내를 두고 홀로 한국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바다 넘어 보냈다. 그의 편지는 글만큼이나 그림이 가득했다. 엽서와 편지지에 그려 보낸 그림은 이후 이중섭만의 고유한 회화 장르인 엽서화, 편지화가 되어 후대에 남았다.
이중섭, 태현에게 보낸 편지, 1954년 10월 28일
서울 종로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는 이중섭이 가족들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와 그림이 관객을 찾아왔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에서다. 이번에 나온 편지들은 모두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다 발견된 여러 통의 편지 중 하나다.

전시작은 그가 장남 태현에게 보냈던 글 편지 1장과 삽화가 그려진 편지 2장이다. 모두 일본에 떨어져 사는 아내와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았다. 이중섭의 편지들 중 그림이 그려진 편지는 현재 공개된 것이 많이 없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편지지 위에 액자를 씌우지 않고 관객이 편지 그대로를 볼 수 있게끔 소개됐다. 삽화 편지에 글이라고는 오직 이중섭의 이름뿐이라는 점에서 그가 그렸던 편지화의 세계를 더욱 잘 들여다볼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오직 그림으로만 전한 것이다. 이중섭이 당시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상상하며 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뒷면에도 아내 마사코의 주소 외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편지를 반송받지 않겠다는 이중섭의 굳은 의지가 담겼다.

편지글에는 아빠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양피 점퍼를 입고 그림을 그린다며 아들을 안심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아들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애절한 마음도 볼 수 있다. 공개된 두 개의 그림편지 중 하나에서는 이중섭이 글에 쓴 대로 양피 점퍼를 입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나와 있다. 또 하나의 삽화엔 아내를 가운데에 두고 복숭아 위에서 뛰놀고 있는 두 아들을 묘사한 그림이 담겼다.
이중섭, 태현에게 보낸 편지, 1954년 10월 28일
이번 전시에는 이 편지 3장뿐만 아니라 이중섭이 아내 마사코에서 연애 시절 보냈던 6점의 엽서화도 함께 공개됐다. ‘사랑의 열매를 그대에게’라는 제목을 짓는 등 아내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석파정 서울미술관을 세운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과 이중섭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안 회장은 2010년 이중섭의 ’황소‘ 그림을 35억원에 매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경매 최고 낙찰가였다. 이후 황소를 비롯한 다양한 이중섭 소장품을 모아 대중에게 선보이며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시 전경. 200호 단색화 대작들이 모여 있다.
이번 전시애서는 이중섭의 그림 외에도 다른 소장품들이 함께 공개됐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10점이 나왔는데, 당시 하나의 화첩으로 제작됐던 것을 하나씩 액자화한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가 썼던 글씨 작품 ‘주림석실 행서대련’도 관객을 맞는다.

김환기의 '십만 개의 점', 서세옥의 '사람들', 김창열의 '회귀', 정상화의 '무제' 연작, 이우환의 '바람' 등 200호가 넘는 단색화 대작들을 한 공간에 모아넣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시 전경. 이우환의 ‘대화’ 시리즈.
새롭게 공개하는 이우환의 대작도 볼 수 있다. ‘대화’ 시리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를 표현해 하늘과 땅, 음과 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계를 그렸다. 빈 여백에 붉고 푸른 두 색만이 존재하듯 관람객들도 빈 공간에서 이 작품 하나만 관람할 수 있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