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10부작 ‘쇼군’… 야성의 시대 일본식 '국뽕' 6부까지만 보자

[arte] 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

디즈니+ 10부작 ‘쇼군’
비사(秘史). 일본 영화 ‘쇼군’의 개봉에 관한 한 한국에는 사연이 많다. 1980년 제리 런던 감독이 만들고 당시 스타급 배우였던 리처드 챔벌레인이 주연한 영화 ‘쇼군’은 한국에 들어 오지 못하던 영화였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라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된 것은 1998년에 이르러서이다. 지금부터 30년이 채 안된 때였다.

그 와중에 영화 ‘쇼군’은 일본에서 1992년에 재편집 판이 나왔고 2년 후인 1994년에 국내에서 수입허가를 받았는데 당신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김동호 위원장 판단으로는 제작사가 미국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일본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라는 것이었다. 언론이 들끓었다. 위장 일본영화를 정부가 허용했다는 것이었다. 김동호 위원장은 이 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며 와신상담한 그가 만든 것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였다.
디즈니+ 드라마 <쇼군>. 사진=디즈니 제공
OTT 디즈니+가 내놓은 10부작 드라마 ‘쇼군’은 영화 ‘쇼군’을 확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둘 다 제임스 클라벨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영화는 압축판이다. 이번 드라마가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살린 것이다. 헷갈리는 것은 그렇다면 원작은 실제 역사를 꼼꼼하게 반영한 것이냐는 점에 있다.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원작 소설과 이번 드라마는 일종의 가필(加筆)의 역사극이다. 더하거나 뺀 얘기가 많다. 실제 인물의 이름들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들을 내세운 것이 가장 혼선을 주는 부분이다.
1981년 국내 개봉한 영화 <쇼군>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 때 넷플릭스라면 원어를 썼을 것이다. 극중 인물인 존 블랙손이 아무리 영국인이라 하더라도 네덜란드 군용상선의 항해사였고, 당시 일본에 포르투갈 천주교, 예수회들이 들어와 있었다면 존 블랙손과 일본 내 신부, 수도사들은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를 써야 한다. 글로벌 OTT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 점에서는 디즈니+가 넷플릭스보다 종(種)다양성을 실현시키는 측면에 있어서 만큼은 로컬리즘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쇼군’은 매력적인 내용과 장면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역(逆)오리엔탈리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당시 일본을 서구인의 시선으로 미개하거나 문명화가 덜 된 사회로 그리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면, 이 드라마는 오히려 그 반대로 일본 문화에 강하게 매혹 당한 서구인의 정서가 강하게 느껴진다. 일종의 일본식 ‘국뽕’이 느껴진다.

‘쇼군’ 드라마를 보는 데 있어서 쉬운 책을 보듯 술술 읽어 나가려면 1600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알아채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풀리게 된다. 드라마 속 표현대로라면 조선 정벌, 우리 식으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터진 것이 1592년에서 1598년까지이다.
영화 <세키가하라 대 전투>
이 드라마의 시작 부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장면이 플래쉬 백으로 나온다. 그가 죽은 것이 1598년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이고 일본 전국은 일촉즉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판이다.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누가 대권을 쥐게 될 것인 가를 두고 당시 일본은 편이 크게 두개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세키가하라에서 대 혈투가 벌어지고 정권은 도쿠카와 이에야스에게 넘어 간다. 그는 일본 막부 역사 중 첫 쇼군이자 유일한 쇼군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일본은 히데야스의 삼남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계승자로 받아 들일 것인가, 새로운 권력을 만들 것인가로 양분되는 데 전자가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교토 오사카 중심)이고 후자가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동군(간토, 에도, 지금이 도쿄 중심)이다. 드라마는 이 두 세력을 대변하는 인물 둘을 내세운다.

극중 인물인 요시히 토라나가(사나다 히로유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오사카 성에서 5대로(5인 평의회)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 이시도 카즈나리(히라 타케히로)는 이시다 미츠나리이다. 드라마는 토라나가 파와 카즈나리 파의 싸움을 배경으로 어쩌다 이 파벌 싸움에 개입하게 된 푸른 눈의 외국인 존 블랙손(코스모 자비스)과 그의 통역사 여인 토다 마리코(안나 사와이)의 비련을 겹쳐 놓는다.

전체 10회 분량에서 6회까지는 흥미진진하다. 사건들이 박진감 넘치게 흘러간다. 여성 캐릭터들도 1600년대라기 보다는 지금 시대에 맞게 약간은 분칠을 했는데, 그것이 드라마상 꽤 볼만한 양념을 제공한다. 통역사 마리코는 분타로라는 이름의 장수(시노스케 아베)의 아내이다. 그러나 그녀는 존 블랙손을 좋아 한다. 존 블랙손에게 하사되는 여인 후지이(호시 모에카)는 원래 토라나가의 가신 히로마츠(니시오카 토쿠마) 집안의 손녀 딸이다. 그의 남편은 요시히 토라나가와 이시도 카즈나리의 정사(政社)논쟁에 개입해 무례를 범했다는 이유로 일족을 폐할 것을 명령 받는다. 그는 갓난 아이를 죽이고 자신은 할복한다.

외국 선원 블랙손은 우연찮게 토라나가 목숨을 구하게 되고 토라나가는 그에 대한 포상으로 (그가 남편과 자식을 죽이라고 명해서) 막 과부가 된 후지이를 블랙손에게 준다. 1600년은 그런 시대였다. 대의를 위한답시고, 명예를 위해서 자결을 허락해 달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해대며, 할복을 하고, 자식들을 거침없이 죽이고, 여자를 주고받던 시대였다. 야만의 시대였지만 그 나름의 규칙과 법을 만들어 한 명의 장군, 쇼군이 통치하던 때였다. 모든 나라의 역사는 그 내부의 시선으로, 내재화(內在化)된 시선으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럴 때에 만이 그 나름의 매력과 장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존 블랙손을 내세우는 척 사실 이 드라마의 핵심 인물은 토라나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인물들은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데 장수 분타로는 존 블랙손이 하사받은 여인 후지이의 할아버지의 또 다른 아들이다. 곧 삼촌이다. 그러니까 후지이와 마리코는 시조카와 고모의 관계가 된다. 여기에 또 다른 가문 하나가 나오는데 야부시게 무사(아사노 타다노부) 집안이다. 야부시게는 토라나가와 카즈나리 파를 오가며 ‘양다리’를 걸친다. 그는 사람이 죽는 순간에 탐닉해 있어 네덜란드 선원 중 한 명을 가마솥 끓는 물에 죽이기도 할 만큼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이지만 에피소드가 뒤로 갈수록 야부시게 캐릭터는 힘이 빠진다. 시즌 드라마가 대체로 몇 명의 감독들이 분담해 연출하는 만큼 캐릭터를 일관되게 끌고 가는 데 있어 의견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드라마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야부시게 캐릭터가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네이버 영화 제공
존 블랙손의 얘기는 사실 너무 가상이다. 이 인물은 나중에 톰 크루즈가 ‘라스트 사무라이’(2004)라는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재탄생시켰다. 1600년대에는 유럽 상선들 다수가 교토를 드나들었으며, 교토에는 외국인 특구가 있었을 정도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해도 존 블랙손은 다소 과하게 극화된 인물로 보인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건 일본 사회와 역사, 문화가 상당히 친 서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나 한국과는 매우 다른, 이질적이라고 할 만큼 차별화된 의식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쇼군’은 6회까지는 아주 재미있다. 뒷 부분 연출은 다소 헉헉댄다. 그래서 좀 건너뛰어도 된다. 그렇게 건성건성 봐도 용서가 된다. 1600년의 격렬했던 일본 전쟁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로 이런 이야기가 세키가하라 대 전투까지 이어지는 작품은 영화 ‘세키가하라 대 전투’이다. 드라마에서 전투 장면이 안 나와 실망한 시청자는 영화를 보면 상세히 펼쳐지는 전투 신을 볼 수가 있다. 2017년 영화이고, 야쿠쇼 코지가 도쿠카와 이에야스 역으로 나왔으며,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만들었다. 하라다 마사토는 ‘일본 패망 하루 전’ ‘헬 독스’를 만든 감독이다. ‘세키가하라 대 전투’는 국내 OTT 왓챠에 있다. <아웃 오브 넷플릭스> 이번 주 원고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넷플릭스 밖에서도 좋은 작품이 많이 있다. 모든 분야에서 독점은 금물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