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만이 내 음악을 이해한다"…모차르트도 사랑한 클래식 천국

체코로 떠나는 음악 여행

10년만에 돌아온 '체코 음악의 해'
스메타나·드보르자크 등 거장들
박물관서 피아노·작곡노트 전시

모차르트 즐겨찾던 '에스테이트 극장'
19세기 고풍스런 샹들리에 등 보존

프라하성 숨은 보물 '로브코비츠 궁전'
베토벤의 '운명·영웅' 등 악보 선보여
올해는 1924년 이후 10년마다 돌아오는 ‘체코 음악의 해’다.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드보르자크 서거 120주년 등을 기념한다. 사진은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전경. /김수현 기자
“모차르트를 소중히 여기고, 스메타나와 야나체크에게 영감을 주고, 드보르자크를 탄생시킨 도시. 이 도시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천국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체코 프라하를 두고 쓴 표현이다. 오베츠니 둠(시민회관), 루돌피눔 등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매일같이 클래식 연주 일정이 쏟아지는 곳이지만, 단순히 귀로 음악만 듣고 체코를 지나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200여 년 전 유럽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예술의 보물고(寶物庫)’가 바로 체코라서다. 1924년 이후 10년마다 돌아오는 ‘체코 음악의 해’, 전설들의 행적을 따라가 봤다.

베토벤 ‘운명’ 친필 악보 품은 로브코비츠 궁전

프라하성 로브코비츠 궁전 박물관에 전시된 베토벤 교향곡 4번과 5번 '운명'의 친필 악보. /김수현 기자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성채 단지’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체코 프라하성. 그 단지를 조금만 걷다 보면 빨간 깃발로 위치를 표시해둔 궁전 하나를 찾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 관련 문서만 4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로브코비츠 궁전이다. 로브코비츠 가문이 소유한 이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악성(樂聖)’ 베토벤의 악보다. 베토벤 교향곡 4번, 교향곡 5번 ‘운명’ 친필 악보 원본과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로이카) 초판본 등이 전시돼 있다.

이유는 로브코비츠 가문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가문의 7대 대공 프란츠 요제프 막시밀리안은 베토벤을 평생 후원했고,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과 5번 ‘운명’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다. 이외에도 이 궁전에선 모차르트가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편곡한 자필 악보의 사본,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초판본 등 귀중한 음악 자료를 대거 발견할 수 있다.

모차르트 ‘돈 조반니’ 초연 펼쳐진 에스테이트 극장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프라하 교향곡 등이 초연된 에스테이트 극장. /김수현 기자
“프라하 사람들은 나를 (완전히) 이해한다.” 모차르트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보다 자신의 음악을 더 깊이 사랑해주는 체코 사람들에게 감격하며 남긴 말이다. 모차르트는 프라하 교향곡과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한 뒤 체코로 돌아와 세계 초연을 올렸는데, 그때 그가 선택한 장소가 바로 프라하 구시가지 한복판에 자리한 에스테이트 극장이다. 모차르트는 생애 마지막 해(1791)에도 이 극장을 찾아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 클라리넷 협주곡을 초연했다.

650여 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이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샹들리에와 귀족을 위한 발코니석 거울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모차르트가 방문했을 당시 극장 내부 색상은 붉은색 계열이었으나 리노베이션 작업(1980~1990년대) 이후 푸른색 계열로 변경됐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스메타나·드보르자크 일생, 박물관서 한눈에…

비셰흐라드 공원에 있는 드보르자크의 묘. /김수현 기자
체코에 왔다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건 필수다. 먼저 1926년 블타바강변에 세워진 스메타나 박물관은 그의 일생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명소다. 스메타나가 직접 연습한 피아노와 작곡할 때 쓴 안경, 리스트·클라라 슈만 등과 나눈 서신, 친필 악보 사본 등이 전시돼 있다. 침수 피해 등에 대한 우려로 주요 자료의 원본은 체코 국립음악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1932년 개관한 드보르자크 박물관은 구시가지가 아니라 신시가지 주택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드보르자크가 생전에 연습한 뵈젠도르퍼 피아노와 비올라, 작곡할 때 사용한 책상과 의자, 미국 뉴욕에서 필기한 작곡 노트, 회중시계와 안경, 필기도구 등이 전람돼 있다. 2023년 9월부턴 특별히 드보르자크 아카이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유모레스크’ ‘피아노 3중주(둠키)’ 등 그의 친필 악보 원본 12점도 차례로 공개하고 있다.두 작곡가는 프라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비셰흐라드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체코 학·문화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거물들을 모시는 곳으로, 화가 알폰스 무하와 작가 얀 네루다·카렐 차페크 등의 묘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체코 어디서나 음악의 향취…제2 도시 ‘브르노’

체코 모라비아 브르노에 위치한 야나체크 극장의 전경. 체코 관광청 제공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중심지인 프라하로부터 기차를 타고 2시간30분가량을 달리면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도 만날 수 있다.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와 함께 체코 3대 작곡가로 꼽히는 야나체크가 태어난 도시다. 그의 이름을 딴 오페라, 발레 전문 공연장인 야나체크 극장, 유럽 최초로 극장 전체를 에디슨의 전기로 조명한 마헨 극장 등이 있어 풍부한 문화예술 시설을 갖춘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는 11월엔 야나체크를 기리기 위한 음악 축제인 ‘야나체크 브르노 페스티벌’도 열린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곡가 스메타나의 출생지인 리토미슐에선 다음달 7일까지 클래식 음악제 ‘스메타나 리토미슐 페스티벌’이 이어진다.
지난 5월 26일 체코 모라비아 블치노프에서 열린 ‘왕들의 기마행렬’(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 축제의 모습. /김수현 기자
체코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준 민속 음악을 접해보고 싶다면 매년 5월 마지막 주말 모라비아 블치노프에서 열리는 ‘왕들의 기마행렬’(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 축제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체코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체코 관광청 한국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라하·브르노=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