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게임체인저 영일만 석유를 꿈꾼다

원유 채굴, 에너지 안보 기반 될 것
'확률 낮다'며 '도전' 회피해선 안 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공곡족음(空谷足音)은 ‘텅 빈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라는 뜻의 사자성어로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일컫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서 우연히 듣는 발걸음 소리만큼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지난주 그야말로 공곡족음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에선 영영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석유, 가스가 영일만 바다 밑에, 그것도 막대한 양으로 매장돼 있을 수 있다는 탐사 결과가 그것이다.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 모두에게 공곡족음은 아닌 것 같다. 단숨에 15위 산유국으로 등극할 수도 있다는 낙관론에서부터, 십중팔구 실패할 일에 호들갑 떨고 있다는 비관론,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석유 개발은 아예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불가론 등이 부딪치고 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시추에 나서야 할 이유가 훨씬 많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안보보다 더 중요한 국가적 가치는 있을 수 없다. 안보는 국방뿐만 아니라 식량, 에너지 등 국가의 안위를 불안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은 모두 그 대상이 된다. 그중에서 국방이나 식량안보는 방위산업 육성이나 식량 자급률 제고 등을 통해 그나마 국내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 반면 에너지 안보는 국내 부존자원이 부족한 탓에 해외 자원개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의 해외 개발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세계 석유 자원은 몇몇 산유국에 편중돼 있고, 개발권은 소수 메이저가 사실상 장악한 게 현실이다. 해외 텃세를 뚫고 자원을 획득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 자원외교 실패도 따져보면 견고한 해외 텃세가 한몫 단단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영일만 석유는 자원개발의 해외 텃세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다. 어차피 해야 할 자원개발을 해외에서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공 확률에 기대어 그것도 산유국과 메이저들의 곁다리 격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이제 당당히 산유국 입장에서 20%에 달하는 높은 확률과 함께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일부 환경론자는 탄소중립을 내세우며 석유 개발 자체에 반대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단숨에 과거나 미래로 날아가듯 현재와 미래가 단절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에너지 전환은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서서히 변하는 경로 의존성을 갖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경로로 불쑥 들어설 수 있는 경로 파괴적 사안이 아니다. 석유는 적어도 영일만 석유가 고갈될 때까지는 석유화학 원료로서, 대형 수송 수단의 연료로서 건재할 것이라는 예측이 현재로선 합리적이다. 최대 재생에너지 투자국이면서도 석유 비축량을 크게 늘려가는 중국의 전략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영일만 석유는 에너지 안보를 넘어 한국 경제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석유화학산업을 비롯한 에너지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은 물론이고 연금, 건강보험 문제도 획기적으로 해결할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 단계에서는 꿈이다. 하지만 자원개발은 극히 희박한 가능성을 붙들고 꿈을 이루려는 희망의 여정이다. 성공 확률은 20%, 성공 시 가치는 최대 20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비용은 5개 시추공에 약 5000억원이 예상된다. 이번 탐사 결과는 공곡족음처럼 불쑥 배달된 게임 초대장과 같다. 현실에 빗대 보자면 카드 5장에서 조커 한 장을 뽑는 경기를 다섯 번 해서 한 번만 이기면 무려 2000만원을 받는 ‘노다지’에 가까운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판돈은 달랑 5000원이다. 초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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