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뷔페·스타벅스 등…바이킹이 잉글랜드 접수하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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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생활에 스며든 북유럽 문화영화 흥행을 점칠 수 있는 팁 하나. 개봉 전 주연배우나 감독이 홍보 차 세계를 돌면 제작진이 전망한 흥행 가능성이 밝지 않다는 증거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인데 ‘터질 영화’는 이런 구질구질한 마케팅 안 한다. 어차피 입소문으로 관객이 들 게 확실한데 뭐 하러 홍보비를 허투루 쓸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가 그랬다. 여든 살이 된 감독을 주요국 순방까지 시키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현재까지 스코어를 보면 제작비 회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퓨리오사>는 well-made 영화다. 다만 너무 지적(知的)인 게 흠인데 영화에는 성경, 그리스신화, 북유럽신화, 로마제국 이야기가 사방에 촘촘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건 먹물들이나 하는 얘기다. 관객들은 머리를 식히러 극장에 가지 머리를 쓰러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고대·중세 북유럽, 인구는 많고 척박해 남하
러시아는 동쪽으로 내려온 루스족에서 유래
상업 활발했던 부족이 공산국가 이름으로
웬즈데이는 오딘의 날, 목요일은 토르에서 유래
유럽에선 북유럽신화가 그리스신화 압도
영화의 기저에 깔린 게 북유럽신화로, 키워드는 대사에 등장하는 ‘발할라’다. 그리스신화에만 익숙하다 보니 북구의 신이라면 오딘과 토르 정도만 알고 있지만 사실 북유럽신화는 대단히 방대하며 유럽만 놓고 보면 인지도 면에서 그리스신화를 압도한다. 수요일에 뷔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치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북유럽 바이킹에 기원한 문화 세 개를 소비한 셈이다. 추위를 피해 남하하던 바이킹 일족이 갈대가 무성한 개울을 보고 자기네들 말로 stor(갈대)+bek(개울)이라고 부른 것이 스타벅스의 어원이다. 뷔페는 바이킹의 식사 습관으로, 이들은 음식을 다양하게 차려놓고 골라 먹는 습관이 있었다. 수요일인 웬즈데이는 북유럽의 주신(主神)인 오딘에서 유래한 단어로 오딘의 날이라는 의미다. 수요일 하루만? 아니다. 화요일(Tuesday)은 전쟁의 신인 티르(Tyr)에서 유래했고, 목요일(Thursday)은 오딘의 아들이자 벼락의 신인 토르(Thor)에서, 금요일(Friday)은 사랑과 미의 여신 프레이야(Friya)에서 유래했다. 북유럽 신들이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꿰찬 것은 11세기에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접수하면서 이들의 신화와 문화가 널리 퍼져나갔기 때문이다.대부분의 신화는 신진 세력이 구세력을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우스가 그랬듯 오딘도 동생들인 빌리, 베이와 힘을 합쳐 거인족 두목 이미르를 죽이고 신들의 군주가 된다. 오딘은 이미르의 시체를 분해해 세상을 창조하는데 살로는 땅을, 뼈로는 산과 바위, 피로는 호수와 바다 그리고 두개골로는 하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은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사람 형상에 오딘은 호흡을 주고, 빌리는 지혜와 힘을 선물했으며, 베이는 언어와 지각력을 얹어주는 것으로 인간 창조는 완성된다. 이후 오딘은 미의 여신 프레이야와 결혼했고 하늘에 자신의 왕국인 아스가르드를 건설한다. 이 아스가르드의 궁전 이름이 발할라다.
전쟁을 주관하는 오딘의 발치에는 두 마리 늑대가 따라다닌다. 각각 탐욕과 굶주림이라는 이름의 두 늑대는 전쟁터에서 죽은 시신을 뜯어먹는다. 늑대들이 시신을 다 먹어치우면 영혼은 반신반인의 여전사인 발키리의 인도로 발할라에 가게 된다. 이 영혼들은 발할라에서 오딘의 전사로 부활하는데, 낮에는 마당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고 밤에는 다시 살아나 연회를 즐기는 생활을 반복한다. 재미있는 것은 발할라에 올 수 있는 자격이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전사들에게만 은총이 주어지는데, 이들은 다 오딘이 점찍어 후원한 용사들이다. 오딘은 마지막 순간에 그를 배신하고 버린다. 그가 전쟁터에서 죽어야만 발할라로 와서 자신의 전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죽인다는 독특한 프로세스인데, 영화에서 워보이들이 임모탄에게 충성을 외치며 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지 알 수 있다.
고대와 중세, 북유럽은 인구는 많고 토지는 부족했으며 식물은 자라지 않았다. 비타민 부족으로 바이킹은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난방을 위해 실내에서 불을 지폈기 때문에 호흡기질환을 달고 살았다. 의료 종사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은 서른 살 내외라고 한다. 신화는 현실의 반영이다. 얼마나 고달프고 죽음이 가까이 있었으면 사후 발할라에서 오딘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겠는가. 추위와 허기에 질린 바이킹은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운은 인생의 전부다. 서쪽으로 남하한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차지하며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다면 동쪽으로 방향을 잡은 바이킹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문명의 측면에서 슬라브인들은 자신들보다 하나 나을 것이 없었으며, 금과 은을 털기는커녕 가난한 마을을 만나면 오히려 보태줘야 할 판이었다. 이들은 슬라브족에게 큰 선물 하나를 남겼다. 나중에 슬라브인들이 만든 나라 러시아라는 국명이다. 당시 동쪽 러시아 땅에 거주하던 슬라브족은 스웨덴 바이킹의 일족인 바랑족(族)을 ‘루스(Rus)족’이라고 불렀는데, 러시아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바랑족이 약탈보다 무역과 상업에 더 관심을 가진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키예프를 무역 거점으로 만들고 상업도시로 발달시켰다. 무역과 상업을 좋아하던 종족의 이름이 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산주의국가 소련의 이름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