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번 놓쳤다"…정부가 '영일만 가스전' 매달리는 이유 [노유정의 의식주]

포항 영일만항. 연합뉴스
<영일만 부근서 양질의 석유 발견>. 1976년 1월 16일 한국경제신문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며 “성분을 분석한 결과 질이 좋은 것으로 판명됐다”고 발표하자 나라가 들썩였지요.정부는 석유전담기구를 만들어 시추 작업에 나섰고, 국내 증시는 폭등했습니다. 그러나 ‘산유국의 꿈’은 1년여 만에 유야무야됐습니다. 당시 발견된 소량의 석유가 인근 공단에서 흘러나온 기름이었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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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영일만 석유 매장설이 약 48년 만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지난 3일 발표했습니다. 추정 매장량 가치는 1조4000억달러(약 2000조원)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입니다.

물론 수천억원대인 석유 시추 비용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영일만 일대 석유·가스 매장 분석을 담당한 미국 액트지오사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지요. 그럼에도 정부가 영일만 석유·가스전 개발에 나서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원빈국 대한민국

정부에 따르면 영일만 매장량 추정치인 최대 140억배럴 중 75%가 천연가스, 25%가 석유로 추정됩니다. 석유는 최대 4년, 천연가스는 29년 동안 우리나라 전체가 쓸 수 있는 양입니다.

목표는 2035년 생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석유와 가스가 실제로 매장돼 있는지,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시추를 해야 합니다. 성공 확률은 20% 수준으로 정부는 최소 5개 이상의 시추공을 뚫을 계획입니다. 시추공 1개를 뚫는 데만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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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에 정부가 과감히 베팅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간하는 에너지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7.8%로 1위, 가스가 23.8%로 2위입니다. 합하면 61.6%로 절반이 넘지요. 신재생에너지가 요즘 대세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입니다.석유와 가스의 문제는 전 세계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것지요. 석유는 전 세계 매장량 중 48.3%가 중동에 있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에만 17.2%가 묻혀 있지요. 중동 다음인 중남미 매장량의 대부분은 베네수엘라에 있습니다. 아시아 매장량은 2.6%에 그칩니다.

천연가스는 러시아 매장량이 전 세계 19.9%로 5분의 1 수준입니다. 역시 중동 비중이 40.3%로 대륙 중 가장 높고, 이란(17.1%)과 카타르(13.1%)에 집중돼 있습니다. 아시아 매장량 비중은 8.8%로 반 이상(4.5%)이 중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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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와 가스 모두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한 국가가 무리 없이 돌아갈 만큼 에너지 수요를 확보하는 에너지 안보가 정말 중요하지요. 하지만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러시아, 이란, 카타르 중 우리나라의 우방은 없습니다. 경제적 교류는 활발해도 유사시에는 에너지 공급을 장담할 수 없지요.

자원외교, 배드엔딩

‘자원빈국’ 우리나라는 그간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자원외교를 핵심 정책과제로 내걸고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과감하 투자했지요. 투자 대상에는 석유·가스 등 에너지 자원 외에도 각종 광물이 포함됐습니다. 리튬, 니켈 등 최근 4차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들도 포함됐지요.

자원 개발을 주도한 공기업은 주로 3곳입니다. 이번 영일만 사업의 주체인 한국석유공사, 영일만 가스전 발표 이후 사상 첫 상한가를 기록한 한국가스공사, 그리고 지금은 한국광해공업공단이 된 한국광물자원공사입니다.

공기업이어야 했습니다. 자원 개발은 빛을 보기까지 10~2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자원 개발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됩니다. 자원이 묻혀 있을 지역을 골라내는 ‘탐사’와 땅을 파 자원을 발견하고 매장량을 가늠하는 ‘개발’, 그리고 경제성이 있는 유전·가스전·광구에서 실제 자원을 꺼내는 ‘생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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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발 단계에서 사업이 막힐 수도 있고, 겨우 캐낸 자원이 경제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리스크가 큰 사업에 오랜 기간 뚝심 있게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은 많지 않겠지요.

자원개발 사업에서 성공 사례 중 하나는 한국가스공사가 진행한 모잠비크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입니다. 2007년에 참여해 15년 뒤인 2022년 처음으로 LNG 생산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만 1억3000만달러(약 1800억원) 매출을 냈어요.

반면 가스공사가 2013년 투자한 지중해 섬나라 사이프러스 해상광구 탐사,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없습니다. 이라크 주비이르 유전 개발 사업은 석유 생산에 성공해 수익을 내고 있지만 하루 최대 생산량 목표가 기존 85만배럴에서 50만배럴로 떨어졌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석유·가스·광물 전체 개발사업(944건) 중 아직 진행 중인 사업(394건) 비중은 전체의 41.7%입니다. 절반 넘는 사업은 종료된 것이지요.

이렇다 보니 자원개발을 주도한 공기업들은 재무구조가 악화됐습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고, 자원비리 논란이 불거지며 우리나라 자원개발 사업은 크게 침체됩니다. 손실을 많이 낸 광물자원공사는 2021년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통폐합됐습니다.


가스주, 영일만 수혜주?

윤 대통령의 영일만 석유가스전 발표 이후 증시에서 가장 먼저 급등한 업종은 가스주였지요. 한국가스공사 외에도 삼천리, 대성에너지 등이 일제히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가스주는 이전부터 대통령 발언에 오르내리던 주식입니다. 가스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가스요금이니까요. 정부가 가스요금을 동결하면 주가가 하락고, 인상하면 올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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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력은 한전이 도소매를 모두 담당하지만, 가스는 구조가 좀 다릅니다. 한국가스공사가 LNG를 해외에서 사 와 각 지역 도시가스사에 파는 도매기업이고, 도시가스사들은 소비자들에게 가스를 공급하는 소매기업입니다.

가스 도매요금이랑 소매요금은 나라가 결정하지요. 민수용(주택용, 일반용) 가스요금의 경우 요금 산정기준인 LNG 수입단가도 정부가 정합니다. 가스요금 인상은 서민들의 부담을 늘리고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쉬운 결단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처럼 LNG 가격이 폭등하면 가스공사가 실제로 수입해오는 LNG 가격은 비싸지지만, 정부가 LNG 수입단가를 안 올려줘서 손해가 납니다. 이 손해를 미수금(못 받은 돈)이라고 하지요. 한국가스공사의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은 1분기 기준 13조5000억원에 육박합니다. 최근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이 공개적으로 가스요금 인상을 촉구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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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같은 국가 기간산업은 그래서 관련주 실적이 좋기 쉽지 않습니다. 한국가스공사의 부채비율은 1분기 기준 458.9%입니다. 삼천리(170.4%), 대성에너지(139.8%) 등 다른 가스주도 높은 수준입니다. 영일만에서 가스 생산에 성공하면 가스 기업들의 비용이 크게 절감되겠지만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지요.

지난해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사태 당시 하한가를 기록한 주식 중에도 삼천리, 서울가스 등 가스주 포함돼 있었지요. 주가조작의 타깃이 될 만큼 유동성이 적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일만에서 실제로 석유와 가스가 생산된다면 국가 경사가 될 겁니다. 종류를 막론하고 글로벌 자원 확보 경쟁이 유례없이 치열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된다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자원 개발 사업은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점을 투자하실 때만큼은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이종석·소재탁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박수영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