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첨단바이오단지 지정으로 지방바이오 활성화하자
입력
수정
윤호열 전남바이오진흥원장지난 4월 30일 강남 테헤란로의 한 빌딩은 마치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첨단 바이오 특화단지 지정을 신청한 11개 지자체 공모발표회 자리였기 때문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의 14개 특화단지 지정에서 제외된 전남 등 광역지자체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마저 더해졌다.전남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전남대학교 화순병원이다. 2022년 4월, 개원 18주년 기념 포럼에 특강을 부탁 받았다. 다만 군단위에 소재한 대학병원이니 그저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광주 송정리역에 도착했다. 화순에 들어서면서 지방 병원이지만 세계적인 암병원으로 성공한 것과 의대·병원과 연결된 대단위 바이오 클러스터에 깜짝 놀랐다. 좁은 안목과 편견에 부끄러움을 안은 채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인연이 이어져 작년 3월 전남바이오진흥원장에 임용됐다. 석박사급 연구원 60%, 200여명이 근무하는 6개 바이오 센터를 총괄하고 남부지역 바이오를 활성화하는 것이 임무다. 35년을 수도권 대기업, 그 중 12년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창립 멤버로 대부분을 인천 송도에서 보냈다. 생면부지의 땅, 전남은 설렘과 두려움이 동반하는 새로운 도전이다.지역소멸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자리 생태계를 갖추는 것이다. 지역 내 정주 가능한 전문인력의 양성과 안정적 공급, 앵커기업 유치와 창업 활성화, 기업이 집적화되도록 특화단지 조성, 파격적인 기업지원 등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선후 없이 동시에 풀어야 할 문제다. 정부의 첨단 바이오특화단지 지정은 종합처방이 될 것 같아 크게 환영한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단지의 신속한 개발은 물론 인허가 신속처리, 애로사항 규제 혁파, 민원 신속처리 특례 및 입주기업의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과 수출 촉진 등의 지역적 이점이 있다.
전남 백신산단, '메디컬+바이오 클러스터'로 전주기 시스템
단지개발, 인프라, 신재생에너지 등 지방 조성해야 유리
바이오는 전국에 25개 이상의 클러스터가 자생적으로 조성될 만큼, 지역 기반이 광범위하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기존의 첨단 산업과는 달리 전기, 용수 등 유틸리티와 대규모 인프라 조성의 필요성이 크지 않고 소규모 창업과 지역별로 차별화된 산·학·병·연 협업을 통해 산업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오와 헬스케어는 지역소멸 대응에 가장 적합한 지방중심형 비지니스로 볼 수 있다.지방 바이오에 대한 낮은 이해와 인식도 바로 잡아야 한다. 최근 롯데그룹 중앙연구소와의 1박 2일 전략적 협업미팅을 가졌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지방 연구역량을 여태껏 몰랐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첨단 기술을 해외에서만 찾았는데, 국내로 돌리겠다”는 말이 대표이사의 마무리였다. 중국 인민망 한국대표는 “임직원들이 정말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하다”는 것으로 특강을 마쳤다. 그간 지방 바이오는 존재가치를 외부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수도권과 중앙의 이해노력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첨단바이오 특화단지에 공모한 전남 백신산업단지는 100만평 규모로 개발할 예정인데, 병원과 의대중심의 메디컬클러스터와 녹십자 등 기업과 정부출자 기관중심으로 바이오클러스터가 조성돼 백신과 면역치료제 분야의 개발·임상·생산·품질인증·허가·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전주기가 형성됐다.
또한 수도권이나 타 지역과 달리 대규모 단지 개발이 용이하고, 전력, 용수공급 등 인프라에서 안정적이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와 원전이 발달한 전남은 RE100 등 글로벌 규제를 가장 용이하게 극복할 수 있는 지역으로 기반 조성에 가장 유리하다.날씨가 좋은 날은 빛가람 호수공원을 가로질러 나주혁신도시 사무실로 간다. 올 봄 갑자기 새소리가 사라졌다. 지난 겨울에 15만평 호수에 가득하던 갈대를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다. 갈대 숲을 걷어내면 새들이 떠나는 것처럼, 특화단지 지정여부에 따라 바이오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 우려된다. 지난 20년간 고군분투해온 지방 클러스터가 세계적인 바이오 허브로 성장하도록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최근 갈대가 다시 무성해지자 아름다운 새소리가 지천이다. 첨단바이오 특화단지는 과밀화된 수도권에 지정하기보다는 이전을 촉진시켜 지방 바이오를 한 단계 혁신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소멸을 극복하고 지방경제 활성화는 물론 대한민국이 친환경 저비용, 바이오 경제로 전환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윤호열 전남바이오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