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은 불지옥" 이른 폭염에 힘겨운 쪽방촌 주민들

창문도 없어 열기 배출 안 돼…에어컨은 '언감생심'
무더위쉼터·쿨링포그 등 지자체 지원에도 한계
"방 안은 불지옥이야. 여름엔 사람 살 데가 못 돼."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서울의 낮 기온이 32.8도까지 오른 이날, 주민 김모(67)씨는 좁은 골목 그늘에 쪼그려 앉아 연신 부채질에 여념이 없었다. 민소매 차림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김씨는 전날 밤에는 더위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고 했다.

이날 한낮 쪽방촌 주민 수십명은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 공터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곳은 한여름이면 덥고 갑갑한 집에서 나와 무료함을 달래는 이웃들로 붐비는 장소다. 소화전 물을 바닥에 뿌려 지열을 식히던 70대 강모씨는 "물을 뿌려도 10분도 지나지 않아 바싹 마르고 아지랑이가 핀다"며 "그래도 집 안에서는 숨이 턱턱 막혀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밖에 있는 것이 낫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1만㎡ 면적의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는 약 4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로 평균 월세 25만원을 내고 머무른다. 방을 1∼2평 남짓한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인 이곳은 1970년대 조성 당시부터 창문조차 없는 방이 많아 여름이면 열기가 배출되지 않는 찜기와 같다. 지붕이 작열하는 햇빛을 그대로 흡수하는 슬레이트 판자로 지어진 집도 많아 한여름 실내 기온은 30도를 거뜬히 넘긴다.

서울시가 폭염을 대비해 전기요금과 에어컨 설치를 지원하지만 제대로 된 건축물이 아닌 탓에 실외기 설치도 어려워 대부분이 선풍기에 의존해 여름을 난다.

어쩔 수 없이 현관을 활짝 열어놓고 생활하는 탓에 사생활을 가릴 수 없고 절도와 성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지자체가 설치한 무더위쉼터와 쿨링포그(주위 온도를 낮춰주는 안개 분사기) 정도가 전부인 실정이다.

한여름 폭염에는 인근 공용목욕탕을 밤에 개방해 수면실로 활용하지만 수용 인원에도 한계가 있다.

영등포 쪽방촌뿐 아니라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 밀집 지역인 종로구 돈의동, 종로구 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령층이 많은 쪽방촌 특성상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여름철 더위로 열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에 걸릴 위험도 크다.

주민들은 결국 주거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모(71)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수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온몸이 땀에 절어도 샤워 한 번 하지 못하고 산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곳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이 열약한 여름을 나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전망이라는 것이다.

영등포구는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을 역세권 공공주택단지로 바꾸기 위한 공공 주도 재정비 사업을 2028년 입주를 목표로 올해 말 착공한다.

재개발 과정에서 쪽방 주민이 내쫓기지 않도록 공사 중 인근에 모듈러 형식(조립식)의 임시 거처를 제공하고, 공사 완료 후엔 원주민을 현재 월세보다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시킨다는 구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돈의동 등 다른 쪽방촌도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건물주들과의 이견 조율로 진행이 늦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지속해 협의해 쪽방촌 거주민들의 여름·겨울철 불편함을 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