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 유리 가마를 지키는 양유완…오차의 예술이 아름답다

모와니 양유완 작가 인터뷰
초여름이라는 계절의 수식어가 무색하게 한낮 기온이 33℃에 육박하던 6월 어느 날, 서울 용산에 있는 한 작업실을 찾았다. 온 몸이 땀에 젖은 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뜨겁고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놀라 뒷걸음질을 치려는 찰나, 밝은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나온 양유완 작가(37)가 말했다. "괜찮아요. 어서 들어오세요."

실내 온도를 40℃를 넘게 달아오르게 한 범인은 양 작가의 유리 가마다. 1년 내내 1250℃의 꺼지지 않는 불가마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의연하게 작업하는 그는 연신 쇠파이프에 숨을 불어넣으며 액체 상태의 유리를 부풀리고 있었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예비 엄마인 그이지만 힘든 기색도, 지친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 작가는 요즘 '가장 트렌디한 유리공예 작가'로 불린다. 패션과 주얼리 부문은 물론 유명 호텔과 백화점까지 각종 브랜드들이 앞다퉈 협업을 의뢰한다. 작업을 잠시 멈추고, 작가와 마주 앉았다.
그는 '모와니 글라스'라는 이름의 유리 공예 브랜드로 유명하다. 브랜드라고 하기엔 양유완의 또 다른 이름을 붙인 작업 아카이브다.
"한자어 '모양 모(貌)'자와 나의 유학 시절 별명이었던 '와니'를 결합한 단어다"라며 "예측이 불가능한 이름처럼 예상에서 벗어난, 경계 없는 작업을 추구하고자 하는 나의 신념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가 만드는 유리 작품의 모양은 정형화 되어있지 않다. 어딘가 미완성작과도 같은 느낌도 든다. 그의 대표작 ‘벨 글라스’나 ‘UFO 연작’ 들도 찍어낸 듯한 반듯함 대신 비정형적 공식을 따랐다. “수작업이란 기계만큼 완벽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형태가 더 매력적입니다.”
이런 비정형적 작업에 빠진 건 호주 멜버른 모나쉬대 유학생활 때였다. 그는 “유학생 시절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달항아리를 보게 됐는데, 관람객의 시선, 주변 환경에 따라 그 모양과 느낌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며 “지루할 틈 없는 달항아리의 모습을 보고 ‘내 작업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 그의 작품이 주는 매력도 여기에 있다. 환경과 빛, 각도에 따라 모양이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떤 공간에 놓이느냐에 따라 각각의 모습으로 잘 어우러진다.
모와니 글라스는 컵과 와인잔, 화병 등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만든다.
“쓰임새에 따라 새로운 작업이 탄생하는 게 가장 즐거운 부분이죠. 저의 의도와 달리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게 최고의 매력 아닐까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그는 최근 패션 브랜드 한섬과의 작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공예가 어떻게 패션과 어울릴 수 있는 지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유리로 벨트의 고리를 만든다던가, 매장 디스플레이를 하는 시도를 했다.
양유완은 수작업만을 고수한다. 1250℃의 가마는 365일 꺼지지 않는다. 그는 “겨울엔 천국이지만, 여름엔 이만한 지옥이 없다”며 웃었다. 한번 가마가 꺼지면 온도를 1도씩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약 한 달은 작업을 할 수 없어서 함부로 멈출 수 없다.

작업의 과정은 복잡하다. 먼저 뜨거운 가마에서 성인 키 만한 쇠파이프의 끝을 잡고 녹는 유리를 떠낸다. 긴 파이프에 유리를 감아서 입으로 불고 모양을 잡는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이때부터다.
"유리는 천천히 식히는 선행 과정이 꼭 필요해요. 큰 작품은 그 기간만 한 달가량이 걸리는데, 이 작업을 거쳐야만 디테일한 아름다움을 추가하는 후가공 작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키만한 굵은 쇠파이프를 불어 유리를 부풀리는 ‘블로잉 기법’을 고수하는 이유는 비정형에 있다. 그는 “가장 힘든 전통기법을 사용해야 가장 자연스우면서 아름다운 작업물이 나온다"며 “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사이즈와 무게의 오차범위가 사라지지만 그만큼 규격에 맞춰 찍은 듯 작품의 패턴도 비슷해진다”고 설명했다.
그가 고집하는 원칙 중 하나는 ‘투명 유리‘다. 색이 들어있지 않은 유리만 사용하는 것. 양 작가는 “난 유리에 대한 프라이드가 아주 강하다”고 했다. 그는 “색깔 유리는 누구나 살 수 있고 비슷한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다”며 “투명한 유리는 그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또 “좋은 크리스탈 유리를 쓰지 않으면 술병처럼 초록빛이 돈다”며 “투명 유리를 쓴다는 건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걸 알리는 셈이다”고 했다.

양유완은 유리와 다른 재료를 융합하는 실험을 꾸준히 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한지, 소뿔 등 한국적인 재료들을 사용한 작품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그가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데에는 대학 졸업작품 전시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양유완의 유리공예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본 지도교수가 그의 작품을 세계 3대 디자인 페어 중 하나인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페어에 출품했다. 그는 “페어에 작품이 출품된 건 모른 채, 밀라노 페어에 참관하러 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회상했다.
“그때 한국적인 미를 강조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밀라노에서 호평을 얻으며 ‘이게 통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의 작품을 알아본 영국의 사치 갤러리는 곧바로 양유완을 갤러리에 초대했다. 밀라노에서 바로 영국으로 날아가 사치갤러리와 민트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인 그는 한국의 미가 한국 밖에서 어떻게 해석되는 지 몸소 깨달았다.
그의 실험정신은 양유완이 공예 전공자가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던 그는 대학 시절 자동차 헤드라이트 디자이너가 되려고 했다. 우연히 유리 공예 수업을 청강하다 매력에 빠졌다.
“산업디자인은 오차가 거의 없어야만 하는 반면 유리공예는 오차가 생겨도 모두 예술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내가 만드는 게 틀려도 곧 답이라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유리만으로 예쁘게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산업디자인을 배웠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많다는 것이 강점이라면 강점이에요. 모와니 글라스도 '실험실'이란 뜻의 '랩'을 붙여 '모와니 글라스 랩'으로 시작했죠. 처음엔 유리에 모래나 도자기 유약, 먹다 남은 닭뼈를 넣는 등 이상한 연구도 많이 했어요."(웃음)
양유완은 유리공예 클래스를 자주 열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는 "작업만 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때가 있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했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는 그리 즐겨 보지 않는다. 타인의 전시를 보면 괜히 따라하고 싶거나, 무의식적으로 쫓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대신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등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에게 유리는 이중적인 존재다. "유리는 마치 인간관계 같다"는 그는 "뜨거울 땐 부드럽고 예민하지 않지만, 식으면 흠집과 단점이 전부 보이고 작은 충격에도 깨진다"고 했다. 유리 공예 한 분야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 이중적인 마력 때문이라고.
양유완은 이제 테이블 밖을 벗어난 예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리공예라고 하면 떠올리는 게 접시나 컵, 화병 정도뿐인데 사실 눈을 돌려보면 창문 거울 조명 모든 게 유리예요. 테이블 밖을 벗어나 공간 공예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영상•사진=이정우 작가•몽쏘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