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제기된 배임죄 폐기론, 국회도 합리적 대안 낼 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 주장을 강하게 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산업계 우려가 커지자 이에 대한 보완 내지는 법적 균형 모색 차원으로 평가되지만, 배임죄 폐지론은 그 자체로 타당하다.

이 원장이 검사 때 기소 실무 경험을 내세우며 폐단을 역설한 배임죄는 기업계가 오랫동안 폐지를 요구해온 숙원 과제다. 형법의 일반 배임(제355조) 외에 업무상 배임(제356조), 기업인에 대한 특별배임(상법 제622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제3조) 등의 강한 처벌 규정이 문제다. 특히 최고 10년 징역형이 가해지는 업무상 배임죄는 위배 행위나 손해의 범위가 워낙 넓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구형과 선고의 폭도 지나치게 넓은 ‘고무줄 처벌’이어서 기업 경영인에게 공포의 법이다. 범죄 구성 요건이 모호하다 보니 1, 2심의 유무죄가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법원에서 무죄율도 다른 일반 형사 범죄보다 월등히 높다.판사들까지 머리 아파하는 이런 ‘억지 법’의 과도한 처벌 규정은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주요 선진국이 사기죄 등을 운용하면서 배임죄는 배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되는 무수한 한국의 ‘경제 범죄’도 대다수 선진국에선 형사처벌 대신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으로 해결된다. 이 원장이 이번에 작정한 듯 문제 제기한 것도 명백한 횡령이나 사기, 일반 배임이 아니라 경제인이 주 대상인 업무상 배임죄다.

배임죄 폐지가 국무위원도 아닌 금감원장이 기자 브리핑 한두 번 한다고 바로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형법과 상법의 소관 부처인 법무부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가 체계적으로 공조해도 여소야대 국회를 설득하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뒤늦었지만 배임죄 폐지가 바람직하나 보완 조치로 ‘경영판단원칙’의 입법화도 도입할 만하다. 이사 등 기업 경영진이 절차를 준수하고 합리적 근거에 기반해 한 의사결정이라면 손해가 발생해도 민·형사상 책임은 면제하는 게 경영판단의 원칙이다. 경제도 어려운 때, 여야 국회가 바로 머리를 맞대야 할 당면 입법 과제는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