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타 노래 들으러 갔다가 앙상블에 빠져버린다
입력
수정
뮤지컬 '시카고'뮤지컬 '시카고'가 공연 중인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링크아트센터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어깨를 움츠리고 다녀야할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출연진들의 얼굴이 담겨 있는 캐스팅보드 앞은 초만원.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인파로 장사진이다. 공연장 객석은 빈자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2층 맨 뒤 자리조차 구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최정원, 민경아, 최재림 등 주연배우 역량과
앙상블의 칼군무와 표정 연기로 만든 무대
화려한 무대나 고음 지르는 넘버 없이
진득한 재즈 템포와 블랙 코미디로 빨아들여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9월29일까지.
'시카고 열풍'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은 이유는 일단 화려한 캐스팅이다. 2000년 초연 공연부터 함께 한 최정원부터 민경아, 박건형, 아이비, 윤공주, 정선아, 최재림, 티파니 영까지 뮤지컬계에서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유한 출연진 한명 한명의 존재감이 강력하다. 무대가 단출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존재감이 더욱 드러난다. 음악을 하는 밴드가 계단식으로 앉아 무대 뒤를 병풍처럼 지키고 있는 것 외에 배경은 없다. 계단 한 가운데에 배우들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리프트 외에 별다른 무대 장치도 없다. 그렇기에 인물 한명 한명의 역량이 더욱 중요한 작품. 첫 장면을 장식하는 최정원의 등장부터 압도한다. 팔을 살랑살랑 흔들며 등장하는 순간 24년째 시카고 무대를 지킨 그만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무게 잡지 않고 푼수 같은 연기와 애드립까지 선보이는 폭넓은 연기력이 돋보인다.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주인공 록시 하트역을 맡은 민경아의 광기 어린 연기와 변호사 빌리 플린을 분한 최재림의 성량은 곡예를 보는 듯한 놀라움이 느껴진다. 록시 하트는 불륜남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있는 코러스걸로 변호사 빌리 플린의 조력이 필요하다. 빌리 플린이 복화술로 노래하는 넘버 '서로 그 총을 뺏으려 했네'가 시작하자 기대감에 부푼 객석이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여자 죄수들의 큰언니 '마마 몰튼'과 록시의 찌질한 남편 '에이모스 하트'까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의 매력과 배우들의 역량이 '시카고'의 힘이다.'시카고'의 또 한 가지 매력 포인트는 앙상블. 화려한 캐스팅에 이끌려 갔다가 앙상블에 놀라게 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무대처럼 배경 역할을 하다가도 힘찬 코러스로 무대를 채우기도 한다. 딱 들어맞는 군무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격정적인 아크로바틱한 안무부터 시카고 특유의 은은하고 끈적이는 동작까지 맛깔나게 살린다. 자세히 보면 얼굴 근육을 전부 동원해 만들어내는 표정 연기도 인상 깊다.
주연들이 묘기를 부리고 앙상블이 몸을 바쳐 만들어진 무대. 고음을 내지르며 성대를 뽐내는 웅장한 넘버가 많지 않다. 대신 쫀쫀한 재즈 음악과 재즈 템포에 맞춰 부드럽게 움직이는 안무가 녹진함을 더한다. 내연남을 살인하는 록시 하트와 그녀의 미모에 반한 언론과 대중들. 도발적인 이야기에 사회와 인간을 비웃는 블랙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덕분에 유머가 튀지 않으면서도 재치가 있다.시원한 고음과 웅장한 무대 없이 진득하게 빨아들이는 작품. 이따금 앙상블로 시선을 돌려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에 집중해서 관람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공연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9월 29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