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집 계단이 얼마나 가파른지 겪어 봐야 안다 [고두현의 인생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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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른 사람의 빵이 얼마나 짠지, 다른 집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험하게 될 것이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곡>은 단테가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어릴 때부터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사후세계인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의 대서사시다. 43세 때인 1308년부터 쓰기 시작해 죽기 1년 전인 1320년에 완성했다. 단테가 신곡을 쓰게 된 것은 첫사랑 베아트리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부유한 집안 딸이었던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강요로 돈 많은 상인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 그리고 스물네 살에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몇 년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였다. 볼로냐 시내 한가운데의 마조레 광장을 찾았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과 델 포데스타 궁전이 있는 곳이다. 그 곁에 커다란 탑이 두 개 서 있는데, 둘 중 하나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진 탑 뒤편에서 단테의 글귀를 발견했다. 볼로냐 도서전에 들렀다가 700년 전의 단테를 만났으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단테는 피렌체 태생이지만 볼로냐 대학에서 많은 지식과 영감을 얻었다. 볼로냐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역사가 900년이 넘는다. 그가 들렀을 만한 장소와 그가 어루만졌을 기둥들을 쓰다듬으면서 탑의 글귀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음날 단테의 생가가 있는 피렌체로 달려갔다. 생가는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 바로 옆에 있었다. 이 오래된 석조건물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평생 잊지 못하고 밤마다 시를 쓰면서 슬픔을 달래던 곳이다.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간의 교만과 방종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특히 교회의 세속화와 황금만능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래서 대성당을 지척에 두고도 골목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녔다. 돈만 밝히는 상인들을 탐탁잖게 여기던 그가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수전노’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비통했을까. 그 아픔들을 속으로 삭여 올올이 엮어낸 것이 바로 <신곡>이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삶에는 아홉이라는 숫자가 여러 가지로 연관돼 있다. 단테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아홉 살 때였고,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난 게 9년 뒤였다. 그녀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 지극한 행복을 느낀 그는 이후 영원한 여성상으로 그녀를 마음속에 품었다. <신곡>도 99개의 칸토(곡)와 서곡 1개로 이뤄져 있다. 단테는 작품 속에서 그녀를 아홉 번째 달 아홉 번째 날에 죽은 것으로 묘사했다. 가장 크고 완벽한 숫자인 9로 사랑의 아픔을 승화시켰으니 이 또한 놀랍다. 그에게 9는 ‘경이로운 삼위일체’의 이상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 사람의 생애를 온전히 사로잡고 삶의 의미까지 바꾸는 것일까. 육신의 죽음 후에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의 생명력, 700년 뒤에도 여전히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에너지. 사랑의 숫자 9로 불멸의 역작을 완성한 단테에게서 열정(시)과 이성(철학)의 씨줄 날줄이 얼마나 아름답게 직조되는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피렌체 시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의 물결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것.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마침내 위대한 작품으로 솟아오른 부활의 힘. 다른 사람들의 ‘눈물 젖은 빵’과 ‘가파른 계단’을 잊지 말라는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단테의 경우처럼 우리 인생의 탑에 새겨질 문구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우리 생에 영원히 새겨질 의미 있는 숫자는 무엇일까.
고두현 시인 kdh@hankyung.com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곡>은 단테가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어릴 때부터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사후세계인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의 대서사시다. 43세 때인 1308년부터 쓰기 시작해 죽기 1년 전인 1320년에 완성했다. 단테가 신곡을 쓰게 된 것은 첫사랑 베아트리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부유한 집안 딸이었던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강요로 돈 많은 상인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 그리고 스물네 살에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몇 년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였다. 볼로냐 시내 한가운데의 마조레 광장을 찾았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과 델 포데스타 궁전이 있는 곳이다. 그 곁에 커다란 탑이 두 개 서 있는데, 둘 중 하나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진 탑 뒤편에서 단테의 글귀를 발견했다. 볼로냐 도서전에 들렀다가 700년 전의 단테를 만났으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단테는 피렌체 태생이지만 볼로냐 대학에서 많은 지식과 영감을 얻었다. 볼로냐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역사가 900년이 넘는다. 그가 들렀을 만한 장소와 그가 어루만졌을 기둥들을 쓰다듬으면서 탑의 글귀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음날 단테의 생가가 있는 피렌체로 달려갔다. 생가는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 바로 옆에 있었다. 이 오래된 석조건물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평생 잊지 못하고 밤마다 시를 쓰면서 슬픔을 달래던 곳이다.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간의 교만과 방종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특히 교회의 세속화와 황금만능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래서 대성당을 지척에 두고도 골목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녔다. 돈만 밝히는 상인들을 탐탁잖게 여기던 그가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수전노’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비통했을까. 그 아픔들을 속으로 삭여 올올이 엮어낸 것이 바로 <신곡>이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삶에는 아홉이라는 숫자가 여러 가지로 연관돼 있다. 단테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아홉 살 때였고,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난 게 9년 뒤였다. 그녀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 지극한 행복을 느낀 그는 이후 영원한 여성상으로 그녀를 마음속에 품었다. <신곡>도 99개의 칸토(곡)와 서곡 1개로 이뤄져 있다. 단테는 작품 속에서 그녀를 아홉 번째 달 아홉 번째 날에 죽은 것으로 묘사했다. 가장 크고 완벽한 숫자인 9로 사랑의 아픔을 승화시켰으니 이 또한 놀랍다. 그에게 9는 ‘경이로운 삼위일체’의 이상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 사람의 생애를 온전히 사로잡고 삶의 의미까지 바꾸는 것일까. 육신의 죽음 후에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의 생명력, 700년 뒤에도 여전히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에너지. 사랑의 숫자 9로 불멸의 역작을 완성한 단테에게서 열정(시)과 이성(철학)의 씨줄 날줄이 얼마나 아름답게 직조되는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피렌체 시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의 물결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것.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마침내 위대한 작품으로 솟아오른 부활의 힘. 다른 사람들의 ‘눈물 젖은 빵’과 ‘가파른 계단’을 잊지 말라는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단테의 경우처럼 우리 인생의 탑에 새겨질 문구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우리 생에 영원히 새겨질 의미 있는 숫자는 무엇일까.
고두현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