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은 비싸고 공공요금은 너무 싼 한국 [강진규의 BOK워치]

한국의 식료품 물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과와 돼지고기는 비교국 중 가장 비싼 편이었다. 반면 공공요금은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농산물 수입 규제와 공공요금 인상을 막은 결과로 물가수준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산물 비싸고, 공공요금은 너무 싼 한국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이슈노트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주요국 비교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와 박창현 한은 물가동향팀장, 이웅지 차장, 이동재 과장이 분석한 내용이다. 한국의 전체 물가수준은 소득 수준을 감안할 때 평균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2022년 1인당 GDP가 OECD 국가 평균의 90% 정도인 상황에서 물가 수준도 90% 안팎이었다. 하지만 품목별로 편차는 가장 큰 편이었다. 식료품과 의류, 주거비 등 의식주 물가 수준은 OECD 최상위권, 공공요금은 최하위권으로 조사됐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식료품 물가는 OECD 평균보다 56%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의류와 신발은 61% 더 비쌌고, 주거비 역시 23% 높은 수준이었다. 반면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36%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 등을 포함한 공공요금은 27% 낮은 수준이었다.
자료=한국은행
세부 품목별로 보면 사과와 돼지고기, 식용유, 티셔츠, 골프장이용료, 렌터카 등이 OECD 국가 중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과는 OECD 평균 보다 세배 가까이 비쌌다. 반면 도시가스요금은 하위 30~40%, 전기요금은 하위 20%에 해당했다.이같은 현상은 과거에 비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식료품 가격은 1990년 1.2배에서 지난해 1.56배로 올랐고, 공공요금은 같은 기간 0.9배에서 0.73배로 더 싸졌다.

농산물 가격 떨어지면 소비여력 7% 확충

농산물 가격이 높고, 공공요금이 낮은 데에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농산물의 경우 공급선이 주요국에 비해 제한적인 점이 문제로 꼽혔다. 한국의 과일과 채소류의 수입 비중은 20% 안팎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은 40~70%로 한국의 2~3배에 이른다. 지리적으로 주요 농업생산지와 떨어져 있는데다, 일부 품목의 경우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을 막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지면적이 좁고, 영세농이 많아 생산성이 낮은 것도 농산물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혔다.

공공요금은 정부의 물가정책에 따라 낮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한국의 에너지요금은 생산비용 대비로도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가계 부담을 감안한 정부의 정책 노력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하지만 이같은 물가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공공요금의 경우 가계의 현재 부담을 낮추는 측면이 있지만 미래세대에 요금을 전가하게 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공공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한다는 게 한은의 생각이다. 농산물은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차질에 대비해 생산성을 높이고 공급채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봤다.
자료=한국은행
한은은 이같은 조치를 통해 한국의 식료품과 의류 가격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가계의 평균 소비여력이 7%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공공요금 정상화를 통해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일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소비여력 감소분(3%)을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한은의 분석은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한 고민을 언급한 후 나왔다. 당시 이 총재는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재정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정책을 계속 수립할 것이냐,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이냐 중 국민의 합의점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봐야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