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들 '자중지란'…휴진기한 놓고 내부 갈등

의료계 내부서 잇따라 혼선…"환자 두번 울리나" 비판

비대위원장 "1주일만 휴진" 발언
3시간 후 "공식 입장 아냐" 번복
교수 내부서 혼선…환자만 피해

이 와중에 '프로 정신' 토론 개최
"개인 이익만 챙기는게 '프로'인가"
< 피켓 든 교수들 >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17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의료계 내부 불협화음이 점입가경이다. 대한의사협회와 전공의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데다 집단휴진에 들어간 의대 교수들도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치 않은 투쟁에 우왕좌왕하면서다. 의료계 내부 목소리조차 통일하지 못해 혼선을 빚는 사이 사태 해결을 기다리는 환자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

‘휴진 1주일만’…세 시간 만에 번복

“집단휴진은 1주일만 하고 다음주엔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다음주 진료를 조정하고 있진 않다.” 강희경 서울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간 17일 오전 11시40분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이 말은 3시간 만인 오후 2시42분에 없던 일이 됐다. 비대위 측이 이메일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번복하면서다. 강 위원장의 발언을 바로잡은 것은 지난달 사직하겠다고 선언한 방재승 전 서울대의대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서울대의대의 전면 휴진은 무기한”이라며 “강 위원장의 휴진 기간 발언은 비대위 내부에서 합의된 의견이 아니다”고 했다. 기존 입장대로 정부 변화가 있을 때까지 휴진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치료받을 곳이 없는 희소·난치·소아질환자가 마지막으로 찾는 국내 최고 국립대병원이다. 이곳에서 환자를 지켜야 할 교수들이 집단휴진이란 극단적 투쟁 카드를 꺼내고도 스스로 명확한 방향과 목적조차 모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비대위가 혼선을 빚는 동안 사태 정상화를 바라는 환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것”이라며 “휴진에 나선 서울대의대 교수들조차 ‘집단행동의 무게감’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 불안한 환자들 >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의 환자 대기석이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임대철 기자

내년 정원 확정…여전히 ‘백지화’ 요구

의사 사회 불협화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중장년층 의사들이 주로 활동하는 의협과 젊은 의사가 모인 전공의단체 간 갈등은 이미 표면화됐다.

전공의 의대생 등이 주로 활동하는 의사 커뮤니티 등에선 의협이 전공의 생계자금으로 100만원씩 지원한 것을 두고 ‘100만원 지원하고 생색만 낸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선배 의사들이 기득권을 지키느라 젊은 의사들이 시작한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4개월째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은 ‘7대 요구사항’에서 한발도 물러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전면 백지화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이미 확정돼 되돌릴 수 없다.

휴진하고 ‘프로정신’ 논한 교수들

환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휴진을 강행한 서울대의대 교수들은 이날 ‘전문가 집단의 죽음-프로페셔널리즘과 교수 소양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에서도 의협과 전공의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오주환 서울의대 교수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노예 해방을 외치고 나왔다면 거꾸로 어떻게 하면 돌아올 것인지 시스템을 요구하라”고 했다. 임현택 의협회장에 대해선 “무대책에 가까운 책임 없는 행동을 하며 박 위원장과 말싸움이나 하는데 이런 한심한 시간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일각에선 환자 진료라는 본분을 외면하고 집단휴진에 나선 것부터 의대 교수들의 ‘프로정신’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단체도 의사들이 이익만 챙기느라 의료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들은 현시점에서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도 집단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홍승봉 거점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위원장은 “의사들의 집단휴진은 중증 환자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며 “10년 후 의사 1509명이 더 나와 의사가 1% 늘어난다고 한국 의료가 망한다고 말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에 대한 의사들의 반대 목소리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마취인력이 부족해 예정된 뇌전증 수술의 40%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사들로 구성된 시민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도 “의대 교수들의 진료 중단은 벼랑 끝에 놓인 환자의 등을 떠미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지현/정희원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