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 주축이면서도 야만적으로 기록된 '노마드'

노마드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까치
464쪽 / 2만2000원
20년 전 ‘노마드(nomad·유목민)’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목초지를 찾아 떠도는’이란 뜻의 그리스어 ‘노마스(nomas)’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낭만적이고 근사한 향수에 젖게 하는 말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노마드’ ‘리치 노마드’ ‘커리어 노마드’ 등으로 다양하게 파생돼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록물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서 유목민은 야만인 혹은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질 뿐이다. 근대 이전까지 이들은 침략자이자 살생하고 파괴하는 무리로 여겨졌으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영국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앤서니 새틴은 이 같은 기록 중심의 역사가 인류 문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유목민을 배제하는 ‘반쪽짜리 역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저서 <노마드>에서 유목민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을 오갔던 유목민들은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데 일조했다.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 등 가치가 서로 다른 문명이 교류할 수 있게 했으며 대륙 양 끝의 문물이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저자는 “서구에서는 흔히 암흑시대로 일컬어지는 시기가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시작됐다”며 “훈족, 아랍인, 몽골인, 중국 원나라를 구성했던 다민족, 그 밖에 다수의 유목민족에 그 시기는 근동(近東)과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부터 헝가리까지 뻗어나간 광활한 대초원 지대의 양쪽 모두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뤄낸 찬란한 시대였다”고 말했다.흑사병 이후 유럽의 항해선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유목민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유럽인들이 지중해를 건너면서 서구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자연에 순응하는 유목민의 삶이 부정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들어 영어 사전에서 ‘nomad’가 사라졌으며, 유목민들의 기록도 축소됐다.

유목민의 삶의 방식은 현재 우리의 유전자에도 깊이 남아 있다. 정착 생활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는 한 장소에 오랫동안 앉아 있지 못하고 관심사가 빠르게 변하는 성질을 ‘산만하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유전학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런 성정은 ‘유목민 유전자(DRD4-7R)’를 보유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인류사에서 유목민이 가지는 중요성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민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룬다. 다만 유목민의 기록이 부족해 비유목민이 저술한 글들을 참고해야 했고, 이 같은 부정확한 서술들은 유목민의 갈등과 편견만 다루고 있어 그들의 삶의 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제대로 된 유목민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인류사가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오늘날, 자연계와 지속적으로 균형을 맞춰간 노마드의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