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한대, 두 사람, 네개의 손, 스무개 손가락 그리고 무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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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은아의 머글과 덕후 사이덕후답게 유튜브 알고리즘은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최신(!) 소식을 부지런히 추천한다. 저작권을 가진 방송사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자신만만한 고화질 영상으로 장식된 레퀴엠, 으름장과 울화라는 지극히 한국스러운 감정을 버무린 '강호동 협주곡' 등이 최근 알고리즘의 신이 덕후에게 간택해준 영상들이다. 교향곡, 그것도 말러나 브루크너 스케일의 우람하고 기골 장대한 곡을 들으며 망양지탄을 느끼다가도 이런 재기발랄하고 힙한(!) 영상으로 풀어낸 클래식 음악에 낄낄거리는 덕후의 삶이란...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2명이 연주하는 '포 핸즈' 피아노
계촌음악제서 김선욱과 조성진 '헝가리 무곡' 함께 연주
앨범 도 매력
근엄하면서도 난잡한 덕후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신 알고리즘은 단연 계촌 클래식 축제, 일명 ‘레전드 포 핸즈'다. 왜 레전드냐 하면 바로 김선욱과 조성진의 네 손이 한 피아노 위를 유영하는 꿈같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곡목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푸릇한 야외 배경, 악보를 들고 엉거주춤 등장하는 김선욱, 멋쩍게 그러나 용기 있고 집중력 있게 페이지 터너 (연주자의 악보를 넘겨주는 보조인) 역할을 수행한 바이올린 단원, 야외 음향과 비전문 레코딩의 음질을 그냥 뚫고 나와 찬란하게 빛나는 조성진의 음색까지…. 완벽한 힐링 레전드 영상 그 자체였다. 출근길에 이 영상을 접한 후 얼마나 많은 포 핸즈를 찾아보았던지. 같은 곡을 15년 전의 조성진이 신수정 교수와 함께 연주한 포 핸즈 영상이 한경 arteTV 유튜브에 남아있었다. 스승과 함께하는 포 핸즈는 동료 뮤지션과 함께하는 포 핸즈와 큰 차이가 있어 좋은 비교가 되었다.
[조성진 & 신수정 - 브람스 헝가리 무곡 (채널. 한경arteTV)]
주로 홀로 피아노 앞에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두 명이 나란히 앉아 건반과 페달을 공유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니, 세팅 자체가 벌써 흐뭇하다. 당연히 뮤지션 간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하다. 빠르기부터 음악의 기승전결까지 정교하게 조율된 음악보다는, 케미스트리가 빚어내는 즉흥성이 오히려 미덕이 된다. 계촌 클래식 축제 현장에 있던 누구라도 오래도록 두 피아니스트의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관련 뉴스] 김선욱과 조성진, 계촌마을에서 선보인 특별한 협연
운명인지 우연인지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앨범도 <포 핸즈-알렉상드르 타로와 친구들>이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진행한 포 핸즈 프로젝트가 앨범으로 나왔다. 시대상을 반영하듯 곡목들도 최단 1분에서 최장 6분가량의 짧은 곡들 위주다. 베아트리체 라나, 비킹구르 올라프손, 브루스 리우(조성진-김선욱의 포 핸즈와 같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다!)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슈퍼스타 첼리스트 고티에 가퓌숑도 알렉상드르 타로와 피아노를 공유했으니 프로젝트의 규모가 남다르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니콜라스 안겔리치(관련 칼럼 읽기)가 타계 불과 1년 전 타로와 함께 연주한 장면(관련 영상 보기)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남아 있어 귀하다. 둘의 돌리 모음곡은 듣기만 해도 포근한 이불을 덮은 듯 따사롭기 그지없다. 돌리 모음곡은 원래부터 피아노 포 핸즈 곡이지만,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하이든 피아노 3중주 등 다른 형태의 원곡을 피아노 포 핸즈로 편곡한 곡들도 실려 있다.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소품들이지만 연주 퀄리티만큼은 굉장하다. 특히 라벨 장인 두명(베르트랑 샤메유, 알렉상드르 타로)이 만나 여유와 관록 넘치게 연주하는 '어미 거위 모음곡 5곡 [요정의 정원]'에서는 느릿하고 우아한 걸음걸이가 점차 무게감을 더하다가 박진감 넘치는 글리산도로 감쪽같이 이행해 마무리하는데 앨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편의 멋진 드라마가 되었다 (관련 영상 보기). 아이슬란드의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알렉상드르 타로와 같이 연주한 '그리그: 4개의 노르웨이 무곡 2번'도 그의 팬이라면 환호하며 들을 만하다.포 핸즈에 대해 길게 썼지만 사실 우리 모두 자신 있는 포 핸즈가 하나씩 있다. 어렸을 적 친구와 함께 치던 ‘젓가락 행진곡'이 바로 포 핸즈다. 연탄곡이 포 핸즈로, 젓가락 행진곡이 필립 글래스의 Stokes로만 바뀌었을 뿐 음악을 좋아하고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그때의 감정만큼은 여전하다. 3분의 시간을 내 조성진과 김선욱의 ‘레전드 포 핸즈’를 감상해 보면 어떨까. 내친김에 알렉상드르 타로의 앨범도 BGM 삼아 틀어놓아 일상에 음악의 품격을 더해 보기를 추천한다. /이은아 칼럼니스트
[조성진 & 김선욱 -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 (채널. 셈플리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