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중화 '동상이몽'… 수학자와 첼리스트의 대담을 엿듣다 [서평]

양성원·김민형 지음
김영사
245쪽/1만 8800원

"대중의 클래식화? 맞는 말 같지만"
수학자와 음악가의 날카로운 '설전'
수학과 음악. 얼핏보면 거리가 먼 분야 같지만, 음악의 기본인 '음'의 근본 원리는 수학에 기초하고 있다. 박자, 리듬, 화성 또한 수리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악에서 수학과 관련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첼리스트 양성원과 수학자 김민형의 만남은 그래서 특별하다. 두 사람의 대담을 엮은 저서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에는 음악에 대한 두 사람의 판이한 접근, 사고방식 등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연주자와 수학가의 시선은 종종 다르지만, '왜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할까'라는 대전제에 모두 공감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책은 두 사람의 '협주'처럼 때론 화합하고 때론 경쟁한다. 김민형 교수는 2012년 호암 과학상을 수상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와 서울대의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국내 대표 수학자이자 지성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왔고, 특히 청소년기에는 독일 낭만주의 가곡에 빠져 수백개의 가사를 모두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고. 그랬던 그는 이제 독일 가곡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음악이 언제나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라는 이유다. 그는 "낭만주의 가곡은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것을 갈망하고, 과거에 대한 비현실적인 향수가 지나쳐 때때로 전쟁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연세대 관현악과 교수이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이에 대해 반박한다. 양 교수는 "음악의 파괴적인 영향은 음악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며 "음악은 인간을 감정적으로 고양하는 것에서 나아가 도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마치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음악 자체는 죄가 없다'는 관점이다.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음악과 관련한 다채로운 주제에 대해 치열한 설전을 벌인다. 전반적으로 양성원 교수는 예술적인 순수성에 초점을 맞춰 이상주의적 관점으로 음악을 바라본다면 김민형 교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이들의 대화를 보면 예술가의 언어를 마치 수학자가 객관적인 언어로 통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연주자는 한계를 두지 않는 풍부한 상상력과 확고한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수학자는 이를 객관적 진리로 좁히려고 하며 음악에 대한 보편적인 해상도를 높이고자 한다. 대담 주제는 '음악이 항상 좋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비롯해 '감동이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감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등 다방면이다. 이중 가장 의미있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주제는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양성원 교수는 클래식의 대중화보다는 '대중의 클래식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중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클래식 음악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같은 취지로 발언을 한 바 있다. 아마도 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동의하는 담론일 것이다. "카뮈의 작품이 대중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바꾸어야 할 까요? 그렇진 않죠. 카뮈의 작품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예술적 가치입니다. "(양성원 교수)

반면 김민형 교수는 유명 음악가들이 '대중을 클래식화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에 걱정을 표한다. 대중화라는 개념을 조금 더 심도깊게 다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중화의 개념을 단순히 쉽고 인기있는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인기 영합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는 연주자와 공연기획사 등 업계 종사자 모두가 "현대 일반인의 삶에 적합한 음악 문화 보급 방식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커뮤니티의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콘서트장에서의 2시간 넘는 연주, 경건하게 들어야하는 객석 분위기 등 당연하게만 생각해왔던 클래식 업계의 포맷에 대해 색다른 방향은 없는건지 모색한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음악은 수학보다 대중화가 훨씬 쉬워야 할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니까요."(김민형 교수)

음악가들과 음악 교육자들은 소위 '팔리는 클래식'에 치중되는 현 음악 시장에 우려를 표한다. 음악 애호가인 김민형 교수 역시 "음악을 잘하는 매우 잘하는 사람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매칭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해결 방안은 사뭇 다른 듯 하다. 김민형 교수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짧고 자유로운 연주회가 훨씬 많아져야 고급스러운 연주회에 대한 수요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양성원 교수는 '긍정적인 엘리트주의'를 이야기한다. 연주자들과 청중 모두 더 가치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진지하고 때론 엉뚱한 담화를 통해 한 분야의 대가들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대화라는 것이 늘 그렇듯, 종종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고, 반복되는 듯한 부분도 있다. 실제 대화를 녹음해서 정리한 책인 만큼 말끔히 정리된 텍스트는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고 대화의 흐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 혹은 클래식 업계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음악가의 관점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상과 객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