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분간의 질주로 엮어낸 영화 '탈주'… 숨가쁜 '탈북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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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감독 신작 '탈주'"도망치는 게 아니라, 제 갈 길 가는 겁니다."
주인공 규남(이제훈)의 대사처럼 영화 '탈주'는 계속 제 갈 길을 간다. 그냥 가는 게 아니고 끝없이 질주한다. 달리는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할뿐 아니라 '탈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 줄창 나아간다. 북한, 군대, 탈북 등을 소재로한 만큼 기시감이 들기 쉽고, 분위기도 무거울 수 있었지만 이 영화는 산뜻하고 가볍다. 남북 이데올로기, 정치적 관점을 과감히 포기하고 원하는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초점을 맞춘 탓이다. 스토리는 사뭇 단순하다. 오래 전부터 탈북을 꿈 꿔온 규남은 전역을 앞두고 탈주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중 변수가 생기게 되면서 과거 인연이 있던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을 마주하게 된다. 현상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사단장 직속보좌 자리까지 마련해주지만, 규남이 탈출을 감행하자 현상은 지독하게 그를 추격한다. 이처럼 극을 이끄는 두 캐릭터 규남과 현상, 각각 배역을 맡은 이제훈과 구교환의 케미스트리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영화는 '도리화가'(2015),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등을 만든 이종필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이 감독은 지난 17일 열린 시사회에서 "탈주라는 근원적 욕망을 다루기 위해 '꿈을 꿨는데 북한에 온 것 같은 콘셉트'를 가져가려고 했다"며 "규남이 남쪽으로 향하면서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 짜릿한 꿈 같은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고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의 의도에 걸맞게 영화의 일면은 꿈처럼 허구적이다. 자줏빛 정장을 레이어드 해서 입은 규남의 모습은 북한 고위급 군인보다는 옛 러시아 귀족같은 느낌을 준다. 또, 평범해보이는 인물 규남이 우연의 연속으로 위험을 극복하고, 원거리에 있는 조명들을 한번에 명중시켜 깨트린다. 죽을 위기에 처해도 불안감 없이 즉각 해결에 나선다. 이런 규남의 지나친 당당함과 용맹함은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는 어느정도 의도한 부분이라고 이 감독은 설명한다. 그는 "규남 캐릭터는 맞닥뜨리는게 중요한 인물"이라며 "당황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고민없이 직진하는 게 캐릭터의 핵심이었다"고 했다. 영화가 지루할 틈없이 '직진'하는 동안 캐릭터들은 꽤나 입체적으로 빌드업 된다.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현상. 그는 여느 추격자처럼 과도하게 악랄하거나 급하지 않다. 항상 립밤과 보습크림을 챙겨 바르고, 일이 안 풀려도 흥분하지 않고 '다음 스텝'을 마련한다. 그의 여유가 오히려 관객을 긴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현명한 설정이었다.
규남의 시선에서 영화가 흘러가지만, 사실 인물로만 보면 헌상에 오히려 공감이 한다. 그는 자기 의지대로 살겠다는 규남을 질투하는듯 보이기도 하고,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과거를 떠올리며 규남에게 은근히 공감하기도 한다. 현실에 충실하지만, 마음 한 켠에 꿈에 대한 미련을 갖는 현상의 모습은 죽음을 감내하면서 탈출을 이행하는 규남보다 우리의 실제 모습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반면 규남의 전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몰래 듣는 10년 차 군인이지만, 그가 그렇게 맹렬히 탈주를 갈망하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만큼 탈북이 간절한 배경 설명은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94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완벽히 붙잡아 둔다. 마치 슈퍼마리오 게임을 하듯, 점프를 하고 구르고 장애물을 피하며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숨가쁘게 직진하다보면 화면이 밝아지면서 엔딩이 다가온다. 관객도 드디어 숨을 놓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7월 3일 개봉.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