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아버지 잃은 세 친구들…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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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지대“너의 아버지를 죽인 너야말로, 여기 있는 시신을 잘 묻어드려야 할 사람이야.”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 작품
전쟁 고아로 인간 잔인함 표현
후반부에 희망의 바다 보여줘
소녀 사베가 친구 아메에게 소리쳤다. 아메는 아버지를 죽였다. 아버지를 적군으로 착각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베의 고함에 아메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날이 떠올랐다. 사베가 아메의 상처를 건드린 이유는 또 다른 친구 윌프리드의 아버지가 숨을 거뒀기 때문이고, 아메가 윌프리드 아버지의 시신을 아무 데나 묻자고 했기 때문이다. 사베는 아메에게 속죄할 기회를 잡으라고 했다.사실은 소녀 사베의 아버지도 죽었다. 그는 전쟁통에 자신의 아버지가 무참히 살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베, 아메, 윌프리드 모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윌프리드는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가 응당 묻혀야 할 곳을 찾아 나선다.
서울시극단의 올해 두 번째 연극인 ‘연안지대’(사진)는 주인공 윌프리드가 아버지 이스마일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전쟁의 민낯을 그렸다.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전쟁 4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 원작이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
세 친구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내전으로 희생된 시신들로 가득 찬 세상을 마주하며 아이들은 희망에 대한 의심, 그리고 포기와 회피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혼란스러워한다. 전쟁이 횡행하는 땅에 아버지를 묻을 수 없었기에, 결국 바다에 그를 떠나보낸다.연안지대 후반부는 펩사이신만큼 맵고 쓰라리다. 어머니 곁을 거절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들고,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부분이다. 대사는 전쟁의 포화보다 끔찍한 인간의 잔인함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해 관객의 불쾌와 불편함을 두루 자극했다.
공연은 무대 배경을 조명과 반사판의 빛 등을 활용해 물결을 형상화했다. 물결의 형상이 배우들의 얼굴 위로 겹칠 때 비로소 실낱같은 희망을 담은 대사도 가끔 만나볼 수 있다.
연안지대의 물결은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우러지고, 전쟁고아들이 마음의 결계를 풀게 한다. 바다는 모든 것을 쓸어가기도 하지만, 다시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