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하노이인지 힙지로인지"…소맥 마는 베트남 MZ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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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주 열풍' 하노이 타히엔 거리 가보니지난 13일 오후 5시경 베트남 하노이 타히엔 거리. 술집, 클럽 등이 밀집해 있는 이 거리엔 이른 저녁인데도 현지 20~30대 젊은층이 많았다. 하노이 유명 맥주거리로 꼽히는 곳인데 최근엔 맥주만큼이나 소주가 인기다.
하노이 최대 맥주거리…K소주 열풍 불어
한국 드라마 보고 소맥 찾기도
한국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하고 갔다는 사진을 내건 한 술집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현지어 못지않게 한글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가게도 많다. 베트남 MZ(밀레니얼+Z)세대가 노상에 앉아서 초록색 병 소주를 마시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흡사 서울의 을지로 한 거리에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동남아 시장에선 베트남 중심으로 소주 수요층이 늘어나는 추세다. 소주 마시는 장면이 많은 한류 드라마 열풍 등에 힘입어 이 지역 소주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베트남 내 소주 판매량은 연평균 약 31%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엔 베트남 진출 이후 현지시장 최대 판매량을 달성했다. 최근 동남아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한류 바람이 거세지면서 한국 술에 대한 현지인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특히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에선 과일 소주 수요가 많다. 과일 소주는 국내에서 ‘한물간 술’로 취급받지만 베트남에서는 낮은 알코올 도수와 새콤달콤한 맛으로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다. 과일 소주를 이용한 칵테일 제조법이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유되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결혼 답례품으로 쓰일 정도다.보드카나 위스키처럼 얼음에 섞어 마시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자두에이슬’ ‘청포도에이슬’ 등 과일소주를 병째 들고 마시는 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대부분 가게마다 소주를 한 병당 15만동(약 8145원)씩 받는데 현지 과실주나 보드카보다 3~4배 비싼 가격이다.
이처럼 다소 가격대가 있다 보니 파티나 회식, 데이트 등 특별한 날 즐기는 경우가 많다. 거리에서 만난 20대 여성 응우옌 안톤 린 씨는 “K팝 아이돌 세븐틴을 좋아하는데 친구들과 모임에서 한국 소주를 접하면서 마시기 시작했다”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들은 소주를 잘 안다“고 말했다.최근엔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들이 드라마에서 봤던 소맥(소주+맥주)을 찾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 한국식 주점 진로비비큐를 운영하는 김광욱 씨(43)는 “몇년 전만 해도 소맥이라는 단어도 없었지만 최근엔 한국 드라마를 보는 젊은 층 중심으로 소맥을 즐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전했다.근래 들어 베트남에서도 MZ세대 사이에서 고급 술집으로 통하는 가스트로 바가 유행 중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소주 소비가 느는 경향도 있다. 주점처럼 편안한 분위기지만 바처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펍과 바의 중간 형태의 업장으로, 베트남의 고급 주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소주는 한국산 위스키처럼 인식되면서 프리미엄 주류로 각광받는 추세다.이날 타히엔 거리는 주류업체들의 판촉 경쟁이 치열했는데, 하이트진로의 글로벌 소주 브랜드 진로를 홍보하는 요원이 등장하자 휴대폰 카메라를 든 이들이 일제히 셔터를 눌렀다. 두꺼비 인형 탈과 옷을 입은 홍보요원 인증샷을 SNS에 올리려는 것이었다. 한국 소주가 각광받으면서 진로 캐릭터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한 베트남 현지 진로 판촉요원은 “인플루언서들이 두꺼비 인형과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을 보고 비슷하게 인증샷을 찍고 가는 20대가 많다”며 “테이블마다 돌며 게임 참여를 유도하고 상품 등을 제공하며 술을 시음하도록 권해보는데 이때 소주를 처음 접해보는 20대들도 있다. 대체로 여성 손님들은 과일 소주를, 남성 분들은 오리지널 소주를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하노이=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