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이화학당장이 미국 고향에 보낸 편지 "학생들이 매우 똑똑해" [서평]
입력
수정
조선 최초 '여자대학' 만든 선교사의 편지 모음집
이화학당에 대학과 만든 프라이
정동에서 목격한 격동의 근현대사
조선의 고난과 희망을 기록

1893년 9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일본 요코하마로 향하는 차이나호 선상에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미국인 여성이 타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선교사가 된 룰루 프라이(1868~1921)였다. 한달 가까이를 항해해 조선에 도착한 프라이는 조선 최초의 여학교 이화학당의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 <정동의 봄>은 프라이가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아버지에게 쓴 첫 편지로 시작해 그가 사망한 1921년까지 어머니와 동생 조지아를 포함한 친지들에게 쓴 140여 통의 편지와 일기 등을 엮은 책이다. 편지는 앞서 1970년 프라이의 조카이자 조지아의 큰딸인 마이라 브래들리 부인에 의해 이화여대에 기증됐다.
1907년 이화학당의 학당장이 된 프라이는 학교 편제를 초·중·고등과 각 4년으로 개편했다. 이어 여성 고등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그는 1910년 대학과를 신설했다. 여성을 위한 대학은 조선에선 시기상조란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결과였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 어쩌면 가장 역사적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프라이가 남긴 편지들은 평범한 한 여성 선교사의 삶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한국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한 비범한 여성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프라이의 편지와 일기에 담긴 조선 말의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의 기록은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