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른 폭염에 벌써 지친 시민들…쪽방촌 주민들은 한숨만

선풍기 하나로 버티며 "너무 더울 땐 그냥 방에…외출은 엄두도 안 나"
양산 쓰고 연신 손부채질…"벌써 이렇게 더우면 장마 후엔 어쩌나"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19일 오후 대전 동구 정동 쪽방촌 일대는 행인 하나 없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10m 남짓한 대로변으로는 음식점과 상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가 요란스러웠지만, 쪽방촌 길가에 놓인 실외기는 단 한대도 작동하지 않았다.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만 뙤약볕을 받았고, 쪽방촌 주민들은 저마다 2평(6.6㎡) 남짓한 방 안에서 선풍기 한 대로 이른 무더위를 버텨내고 있었다.

주민 안모(70대)씨는 "대전역이나 은행, 무더위쉼터를 가도 되지만 눈치가 보인다. 너무 더울 땐 그냥 방에 있는다.

외출할 엄두가 안 난다"며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안씨는 "작년에는 이렇게 덥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6월부터 무더위가 유난스럽다"며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 이모(50대)씨는 방에 고물이나마 에어컨이 있지만 한 번도 켜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월세 20만원 내기도 빠듯하다"며 "사실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쪽방촌에서 멀지 않은 대전역 앞에서 만난 시민들도 때 이른 무더위에 양산이나 우산을 쓰고 손부채질하기 바빴다. 군밤과 찐 옥수수, 가래떡구이를 파는 노점을 찾은 손님은 한 명도 없었지만, 냉면과 메밀국수를 파는 음식점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폭염 그늘막 안에서 횡단보도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이모(30대)씨는 "출장을 가려고 대전역을 찾았는데 너무 더워서 벌써 셔츠 안이 다 젖었다"며 "점심도 시원한 거로 먹었다"고 했다.

장모(60대)씨는 "장마 후에는 더 더워질 텐데 걱정"이라며 "논산에 홀로 살고 있는 엄마한테도 밭에 나가지 말라고 매일 전화한다"고 말했다.
대전·세종·충남 지역에 무더위가 이어지자 행정당국도 각기 폭염 대응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시는 고령층과 쪽방촌·노숙인 밀집 지역 등 폭염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폭염특보 발효 시 생활지원사를 통해 폭염 취약 고령층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유관기관과 함께 폭염 취약지역 순찰을 강화하고 폭염 예방 용품도 나눠줄 방침이다. 폭염 그늘막과 무더위쉼터 점검을 완료한 세종시는 이날 시 전역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자 도로 복사열 및 도심 열섬현상 완화를 위한 살수차를 운행하고 폭염특보 정보를 전달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