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경영, 기업가정신은 사회적 책임이다 [한경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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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마이다스그룹 회장·마이다스아이티 최고인사책임자(CHO)
1945년 광복 직후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2024년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2024년 3만 5,000달러로 500배 이상 높아졌다. 삼성, 현대, LG 등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한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끈 주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피터 드러커는 “영국이 250년 만에 이뤄낸 것을 한국은 40년 만에 해냈다”며 “기업가정신의 최고 실천 국가는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한강의 기적’을 이룬 실질적 원동력은 산업보국의 정신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기업과 기업가정신이다. 산업의 핵심은 기업이고, 이 바탕에는 기업가정신이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기업가들의 도전과 열정이 큰 몫을 담당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출현한 기업들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기업을 바라보는 이중적 잣대가 특히 두드러지는 듯하다. 기업이 경제 발전과 사회 번영의 원동력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윤 창출에 함몰된 이기적 집단으로 바라보는 반기업 정서도 적지 않다. 지난 4월에 발표된 <2024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 2024 Edelman Trust Barometer>에 따르면, 조사 대상 28개국 가운데 ‘기업’과 ‘고용주’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국가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세계적인 대기업의 탄생, 수출 주도형 경제, 그리고 기술 혁신과 산업화 등 자본주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다. 자본주의 이점을 가장 많이 활용한 한국에서 기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만연한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일부 기업과 기업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또한 그것은 기업 활동에 대한 윤리적 감시의 확대 등을 통해 해결할 문제지 기업의 역할과 가치를 부정할 근거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기업의 역할과 가치는 무엇일까? 우선 기업은 경제적 주체로서 사회에 물질적 풍요를 제공한다. 오늘날 지구촌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기아 문제다. 지금 인류는 기업이 생산한 사회의 부(富)를 통해 기아 문제 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30년을 기점으로 절대 빈곤층 제로 시대를 열게 되리라는 유엔(UN)의 전망은 인류 역사의 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 나아가 기업은 사회적 유기체로서 사회의 존속과 번영에 기여한다. 기업은 경제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를 향해 열매를 맺는다. 기업은 함께 모여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 시너지를 통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만든다. 이윤은 이러한 경영 행위를 통해 산출되는 부수적 가치이고, 이는 다시 투자와 세납을 통해 사회적 가치 생산과 복지를 위한 재원으로 순환된다. 이윤 추구는 기업의 목적이 아니다. 기업이 이기적 집단이라는 인식은 근시안적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경제 활동을 통해 사회적 부와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기업은 본래 인류 사회의 적응과 번영을 위한 사회적 발명품이었다.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집단 시너지를 추구하며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 차츰 공동체 규모가 커지고 협력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집단 시너지를 추구할 필요가 생겨났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400여 년 전 최초의 기업이 등장했다. 이후 기업들은 사회의 부를 창출하며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키우며 세상을 바꾸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철학자 니컬러스 버틀러는 기업이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그저 하나의 기계로 남았을 것이라며 “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라고 갈파했다. 이는 기업이 단순한 이윤 추구 집단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고 번영으로 이끄는 중요한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기업은 사회라는 초유기체의 일부이자 전체와 연결된 존재다. 따라서 기업이 생산하는 가치는 사회에 의해 판단되고 선택된다. 이는 사회 존속과 번영에 기여하지 못하는 가치는 퇴출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기업은 오로지 친사회적일 때만 존속할 수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친사회적일 수밖에 없고 친사회적이어야만 한다. 기업은 친사회적 가치를 재료로 ‘이기적’ 동기를 ‘이타적’ 기여로 연결한다. 즉 기업 경영은 본질적으로 이윤 추구라는 이기적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에 효용을 제공하는 친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이타적 기여로 귀결된다.“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이 유명한 문장은 흔히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거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강조할 때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한 결과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이야기한 것은 “이기심에 기반한 개인 혹은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기업가의 이기적 동기가 사회적 효용의 창출로 연결된다는 관점은 경제적 유기체이자 사회적 유기체인 기업의 본질을 통찰력 있게 짚어주는 대목이다.
기업은 인류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며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왔다. 농업 기술의 발전은 식량 문제를 해결했고, 의학의 진보는 인류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교통 및 통신 수단의 발달은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했다. 기업 활동을 통해 창출된 이러한 가치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 실현의 물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면 기업이 인류 사회의 진보를 주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을 이해하려면 먼저 산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산업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작동되는 경제 현상’이다(경제=수요X공급). 수요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고, 공급은 인간의 기술을 통해 이뤄진다(산업=욕망X기술). 산업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산업의 본질은 욕망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있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효용을 창출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산업혁명은 기업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할 때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변혁적 현상이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어떤 기능을 대체했을까? 인간의 기능은 크게 신체적 기능과 인지적 기능으로 나뉜다. 신체적 기능은 다시 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사용 기능으로, 인지적 기능은 데이터 저장과 데이터 처리 기능으로 각각 구분된다. 지금까지 진행된 네 차례의 산업혁명은 각각 특정의 혁신적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 · 인지적 기능을 대체하고 확장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변화를 촉발했다. 동시에 각 산업혁명은 대체되는 인간 기능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 기계혁명, 생산혁명, 정보혁명, 지능혁명의 특징을 띠며 진행돼왔다.
먼저 1차 산업혁명은 신체의 에너지 생산 기능을 증기기관과 같은 동력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일어났다. 다음으로 전기를 활용한 동력화 기술로 가능해진 자동화 생산방식이 신체의 행동 기능을 대체하면서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이 데이터의 생산, 연결, 저장과 관련된 인지적 기능을 대체하면서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추론과 예측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인지적 기능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면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현재 진행 중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 사회는 어떻게 발전하고 진보했을까? 단적인 예로 세계총생산(Global GDP)은 1차 산업혁명 직전인 1700년대 초 6433억 달러에서 2021년 96조 5000억 달러로 150배가량 증가했다. 미국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지금 다시 계몽>이라는 책에서 이를 “1700년에 분배되던 파이가 표준적인 지름 20센티미터 팬에서 구워진 것이라면, 현재 우리 앞에 있는 파이는 지름이 3미터가 넘는다”라는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하기도 했다.
산업혁명은 생산력 향상을 통한 경제 성장을 넘어서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통해 인류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왔다. 대량생산된 의류와 가전제품으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 자동차와 대중교통 발달로 인한 일상의 공간 확장,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 증대와 같은 삶의 질적 변화를 통해 인류를 더욱 풍요로운 삶으로 이끈 것도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이 해온 일이다.
또 산업혁명은 의료기술의 발전을 통해 질병의 위험을 낮추고 노화를 늦춤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00년대 초에 6억 명 정도였던 세계 인구는 2023년에 약 80억 명으로 13배 이상 늘어났다. 또 평균 기대수명은 1700년대 30세에서 2018년 기준 72세로 늘어났다. 한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의 기대수명은 수년 전부터 80세가 넘었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풍요와 복지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이념적 진보를 유도하여 가치혁명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이 이끌어낸 경제적, 사회적, 이념적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첫째, 기업은 생산성의 혁신을 통해 인류를 빈곤에서 해방시켰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더 큰 파이를 만드는 법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사회적 부가 크게 늘어났고, 비로소 세상은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으로 바뀔 수 있었다.
둘째, 기업은 생산성의 혁신적 향상을 통해 인간이 단순한 생존 활동을 넘어서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노동력의 재배치를 통해 잉여노동력이 창출되면서 인류 문화와 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셋째, 기업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 진보의 실질적 주체로 그 역할을 확장했다. 기업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편리한 생활을 돕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삶을 바꾸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기업은 계몽시대 이후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사회의 부(富)를 창출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넘어 국가 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기술 혁신 등 다방면에서 사회 번영과 이념적 진보의 근간이 돼왔다. 기업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기업은 사회를 먹여 살리고 작동시키는 심장이고 엔진이다.
기업은 어떻게 사회적 진보를 견인할까? 기업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혁신을 통해 산업혁명을 촉진하고, 산업혁명은 인간의 욕망을 변화시키고 성장을 이끎으로써 사회적 진보를 견인한다. 성장과 진보는 더 나은 가치의 추구를 통해 이뤄진다. 인간의 성장은 욕망의 성장이다. 욕망의 성장은 생물, 동물, 인간으로 진화해온 자연의 결에 따라 물질적 가치, 사회적 가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욕망의 천이는 다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유도하면서 산업의 발전을 촉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진보를 이끌어낸다.
산업은 복지를 기반으로 사회적 공생과 공존을 통해 인류 공영을 유도하며 진보를 이끌어간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곧 산업 발전과 기업 혁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전진하며 진보의 역사를 써내려 갈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기업의 역할이 될 것이다. 기업이 인류 사회 진보의 주체라면, 그 기반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 할 수 있다. 기업가정신은 혁신과 창조의 원천이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체적 실행이다. 기업가정신 없이는 기술 혁신도, 산업 발전도, 사회 변혁도 불가능하다. 기업가정신은 인류 역사를 진보로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9,999가지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며 실패를 성공으로 가는 과정으로 여겼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은 전기 조명이라는 혁신적 가치를 인류에게 선사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업한 후 쫓겨났지만, 결국 다시 애플로 돌아와 혁신적인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혁신적 사고로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탄생시켰다. 잡스의 집요한 완벽주의와 혁신적 사고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우리의 일상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다.
에디슨과 잡스의 사례는 기업가정신의 핵심이 불굴성과 혁신성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굴성은 어떤 난관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으로 드러난다.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은 ‘될 때까지 한다’는 신념 하나로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간다. 다음으로 혁신성의 핵심은 기존의 요소들을 재조합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있다. 혁신적 기업가들은 미래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기술, 제품, 생산성을 혁신하고 시장을 개척한다.
불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적 혁신은 사회적 책임과 결부될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완성될 수 있다. 기업의 혁신은 사회 전반의 변혁으로 이어진다. 기업가들은 결코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혁신적 가치를 창조한다. 혁신의 방향을 사회적 가치 창출에 맞춤으로써 기업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낸다.
기업가정신은 단순한 경영 철학이 아니고 액자 속에 박제된 이념적 문구도 아니다. 기업가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은 더더욱 아니다.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기업가정신은 과학도 예술도 아닌 ‘경영의 실제(practice)’다. 기업가정신은 아이디어나 신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발전을 위해 경영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실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기업가정신은 경영 현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력의 에너지로 기업과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실질적인 등불로 작용하며 빛을 발한다.
세상은 제어하기 힘든 수많은 변수가 역동적이고 불규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성공에 이르는 경로도 구불구불하기 마련이다. 경영 현장은 말할 것도 없다. 비전을 갖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노력과 실천은 별개의 일이다. 비전은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적으로 대응하는 지속적 실행을 통해 비로소 실제적 현실이 된다.
비전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래 가치는 주어지는 현재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래서 기업가는 현실의 최선을 통해 미래의 최상을 꿈꾸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여야 한다. 현실과 이상은 반대말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통해서만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 현실에 발 딛지 않은 이상은 공허하고, 이상 없는 현실은 허무하다. 기업가는 하늘을 목표로 하되 발은 늘 땅에 딛고 한 걸음씩 오늘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 이상주의자로서 기업가는 언제나 경계에 선다. 질서와 혼돈, 이치와 가치, 본질과 실용, 이기와 이타를 오가며 그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들이 바로 ‘기업가’라는 경계인이다.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경계인은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계인에게 흔들림은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찾고 만들어가는 움직임이다. 이탈하지 않으려면 매 순간 자신의 위치를 수정하며 진북을 향하려는 나침반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기술과 제품은 어떨까?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의 손에 쥐인 스마트폰 하나에도 많은 이들의 노력과 더불어 인류의 집단지성이 응축되어 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비롯한 다양한 전자공학 이론과 기술의 개발, 그리고 전화기의 발명, 컴퓨터의 진화, 인터넷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아이폰 역시 이러한 인류 공동의 과학적 자산과 기술적 결실 위에서 탄생한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내 것이라 할 것도 없다. 오직 과거로부터 빌려와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낼 뿐이다.
기업이 창출하는 부도 사회의 것이다. 법적으로는 개인의 소유로 인정되지만, 그것은 영구적 소유권이 아닌 자원을 운용할 수 있는 일시적 집행권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구도 부를 가지고 죽음을 넘어설 수 없다. 노숙자도, 억만장자도 결국 동일한 유기물질로 돌아간다.
우리는 유전자풀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개인의 성취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도 사실은 수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축적되고 전달된 결과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자원, 이를 통해 만들어낸 성과는 모두 사회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개인 소유 이전에 사회적 공동 자산이다.
그러면 기업가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기업에서 훌륭한 기업으로, 다시 위대한 기업으로 부단히 나아가는 것이다. 좋은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통해 구성원의 행복을 책임진다. 훌륭한 기업은 친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한다. 위대한 기업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유산을 남김으로써 시대를 초월하여 영속한다. 기업의 가치는 경제적 수준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위대한 기업으로 가기 위한 진정한 가치는 시간에 녹슬지 않고 세월에 바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함은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다. 위대한 기업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이 되는 올바른 가치를 추구한다. 진정한 위대함은 올바른 가치를 찾고 묵묵히 행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오늘의 발걸음에 있다. 그 길은 분명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겠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용기 내어 그 길을 가는 것만이 기업가의 가장 값진 성취이자 가장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삶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는 완성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택한 수단적 이념이지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인본(人本)’이다. 인본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의 선을,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의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가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생존의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면서 공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인류는 공생을 통해 민족, 국가, 인종을 함께 아우르는 공존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생존과 공생을 넘어 공존으로 향하는 그 변화의 중심에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위대한 기업으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할 가치는 ‘공존’이다. 그것은 현실적 이상주의자로서 기업가가 품어야 할 나침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기업의 진정한 역할과 함께 기업가로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업가는 자신을 태워 미래를 밝히는 선각자이자 선지자이며, 세상의 중심에서 불굴의 용기로 세상을 밝히는 선구자다. 다음의 시를 기업가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며 글을 마칠까 한다.
본질로부터 실용을 만들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경영자는
정체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자이고
안주하지 않고 세상을 열어가는 개척자이며
현재보다 앞서 미래를 지향하는 선구자입니다
삶의 이치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는 철학자이고
미지의 현상을 연구하고 규명하는 과학자이며
창의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입니다그러므로 경영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선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상의 주역입니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6월 21일자에 게재된 한경에세이 ‘기업가는 현실적 이상주의자다’ 전문입니다.
1945년 광복 직후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2024년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2024년 3만 5,000달러로 500배 이상 높아졌다. 삼성, 현대, LG 등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한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끈 주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피터 드러커는 “영국이 250년 만에 이뤄낸 것을 한국은 40년 만에 해냈다”며 “기업가정신의 최고 실천 국가는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한강의 기적’을 이룬 실질적 원동력은 산업보국의 정신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기업과 기업가정신이다. 산업의 핵심은 기업이고, 이 바탕에는 기업가정신이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기업가들의 도전과 열정이 큰 몫을 담당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출현한 기업들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기업을 바라보는 이중적 잣대가 특히 두드러지는 듯하다. 기업이 경제 발전과 사회 번영의 원동력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윤 창출에 함몰된 이기적 집단으로 바라보는 반기업 정서도 적지 않다. 지난 4월에 발표된 <2024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 2024 Edelman Trust Barometer>에 따르면, 조사 대상 28개국 가운데 ‘기업’과 ‘고용주’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국가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세계적인 대기업의 탄생, 수출 주도형 경제, 그리고 기술 혁신과 산업화 등 자본주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다. 자본주의 이점을 가장 많이 활용한 한국에서 기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만연한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일부 기업과 기업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또한 그것은 기업 활동에 대한 윤리적 감시의 확대 등을 통해 해결할 문제지 기업의 역할과 가치를 부정할 근거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기업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유독 한국에서 기업에 대한 편향된 인식이 두드러지는 것은 기업의 순기능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기업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그렇다면 기업의 역할과 가치는 무엇일까? 우선 기업은 경제적 주체로서 사회에 물질적 풍요를 제공한다. 오늘날 지구촌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기아 문제다. 지금 인류는 기업이 생산한 사회의 부(富)를 통해 기아 문제 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30년을 기점으로 절대 빈곤층 제로 시대를 열게 되리라는 유엔(UN)의 전망은 인류 역사의 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 나아가 기업은 사회적 유기체로서 사회의 존속과 번영에 기여한다. 기업은 경제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를 향해 열매를 맺는다. 기업은 함께 모여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 시너지를 통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만든다. 이윤은 이러한 경영 행위를 통해 산출되는 부수적 가치이고, 이는 다시 투자와 세납을 통해 사회적 가치 생산과 복지를 위한 재원으로 순환된다. 이윤 추구는 기업의 목적이 아니다. 기업이 이기적 집단이라는 인식은 근시안적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경제 활동을 통해 사회적 부와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기업은 본래 인류 사회의 적응과 번영을 위한 사회적 발명품이었다.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집단 시너지를 추구하며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 차츰 공동체 규모가 커지고 협력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집단 시너지를 추구할 필요가 생겨났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400여 년 전 최초의 기업이 등장했다. 이후 기업들은 사회의 부를 창출하며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키우며 세상을 바꾸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철학자 니컬러스 버틀러는 기업이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그저 하나의 기계로 남았을 것이라며 “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라고 갈파했다. 이는 기업이 단순한 이윤 추구 집단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고 번영으로 이끄는 중요한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기업은 사회라는 초유기체의 일부이자 전체와 연결된 존재다. 따라서 기업이 생산하는 가치는 사회에 의해 판단되고 선택된다. 이는 사회 존속과 번영에 기여하지 못하는 가치는 퇴출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기업은 오로지 친사회적일 때만 존속할 수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친사회적일 수밖에 없고 친사회적이어야만 한다. 기업은 친사회적 가치를 재료로 ‘이기적’ 동기를 ‘이타적’ 기여로 연결한다. 즉 기업 경영은 본질적으로 이윤 추구라는 이기적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에 효용을 제공하는 친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이타적 기여로 귀결된다.“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이 유명한 문장은 흔히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거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강조할 때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한 결과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이야기한 것은 “이기심에 기반한 개인 혹은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기업가의 이기적 동기가 사회적 효용의 창출로 연결된다는 관점은 경제적 유기체이자 사회적 유기체인 기업의 본질을 통찰력 있게 짚어주는 대목이다.
산업혁명, 인류 사회 진보의 원동력
불과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맹수의 위협, 기후 변화, 식량 부족 등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편리한 삶을 누리고 더 나은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인류의 운명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며 인류 공영에 기여한 숨은 주역은 바로 기업이다.기업은 인류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며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왔다. 농업 기술의 발전은 식량 문제를 해결했고, 의학의 진보는 인류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교통 및 통신 수단의 발달은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했다. 기업 활동을 통해 창출된 이러한 가치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 실현의 물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면 기업이 인류 사회의 진보를 주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을 이해하려면 먼저 산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산업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작동되는 경제 현상’이다(경제=수요X공급). 수요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고, 공급은 인간의 기술을 통해 이뤄진다(산업=욕망X기술). 산업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산업의 본질은 욕망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있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효용을 창출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산업혁명은 기업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할 때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변혁적 현상이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어떤 기능을 대체했을까? 인간의 기능은 크게 신체적 기능과 인지적 기능으로 나뉜다. 신체적 기능은 다시 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사용 기능으로, 인지적 기능은 데이터 저장과 데이터 처리 기능으로 각각 구분된다. 지금까지 진행된 네 차례의 산업혁명은 각각 특정의 혁신적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 · 인지적 기능을 대체하고 확장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변화를 촉발했다. 동시에 각 산업혁명은 대체되는 인간 기능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 기계혁명, 생산혁명, 정보혁명, 지능혁명의 특징을 띠며 진행돼왔다.
먼저 1차 산업혁명은 신체의 에너지 생산 기능을 증기기관과 같은 동력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일어났다. 다음으로 전기를 활용한 동력화 기술로 가능해진 자동화 생산방식이 신체의 행동 기능을 대체하면서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이 데이터의 생산, 연결, 저장과 관련된 인지적 기능을 대체하면서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추론과 예측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인지적 기능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면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현재 진행 중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 사회는 어떻게 발전하고 진보했을까? 단적인 예로 세계총생산(Global GDP)은 1차 산업혁명 직전인 1700년대 초 6433억 달러에서 2021년 96조 5000억 달러로 150배가량 증가했다. 미국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지금 다시 계몽>이라는 책에서 이를 “1700년에 분배되던 파이가 표준적인 지름 20센티미터 팬에서 구워진 것이라면, 현재 우리 앞에 있는 파이는 지름이 3미터가 넘는다”라는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하기도 했다.
산업혁명은 생산력 향상을 통한 경제 성장을 넘어서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통해 인류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왔다. 대량생산된 의류와 가전제품으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 자동차와 대중교통 발달로 인한 일상의 공간 확장,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 증대와 같은 삶의 질적 변화를 통해 인류를 더욱 풍요로운 삶으로 이끈 것도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이 해온 일이다.
또 산업혁명은 의료기술의 발전을 통해 질병의 위험을 낮추고 노화를 늦춤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00년대 초에 6억 명 정도였던 세계 인구는 2023년에 약 80억 명으로 13배 이상 늘어났다. 또 평균 기대수명은 1700년대 30세에서 2018년 기준 72세로 늘어났다. 한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의 기대수명은 수년 전부터 80세가 넘었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풍요와 복지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이념적 진보를 유도하여 가치혁명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이 이끌어낸 경제적, 사회적, 이념적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첫째, 기업은 생산성의 혁신을 통해 인류를 빈곤에서 해방시켰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더 큰 파이를 만드는 법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사회적 부가 크게 늘어났고, 비로소 세상은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으로 바뀔 수 있었다.
둘째, 기업은 생산성의 혁신적 향상을 통해 인간이 단순한 생존 활동을 넘어서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노동력의 재배치를 통해 잉여노동력이 창출되면서 인류 문화와 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셋째, 기업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 진보의 실질적 주체로 그 역할을 확장했다. 기업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편리한 생활을 돕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삶을 바꾸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기업은 계몽시대 이후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사회의 부(富)를 창출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넘어 국가 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기술 혁신 등 다방면에서 사회 번영과 이념적 진보의 근간이 돼왔다. 기업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기업은 사회를 먹여 살리고 작동시키는 심장이고 엔진이다.
기업은 어떻게 사회적 진보를 견인할까? 기업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혁신을 통해 산업혁명을 촉진하고, 산업혁명은 인간의 욕망을 변화시키고 성장을 이끎으로써 사회적 진보를 견인한다. 성장과 진보는 더 나은 가치의 추구를 통해 이뤄진다. 인간의 성장은 욕망의 성장이다. 욕망의 성장은 생물, 동물, 인간으로 진화해온 자연의 결에 따라 물질적 가치, 사회적 가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욕망의 천이는 다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유도하면서 산업의 발전을 촉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진보를 이끌어낸다.
산업은 복지를 기반으로 사회적 공생과 공존을 통해 인류 공영을 유도하며 진보를 이끌어간다. 인류 진보의 역사는 곧 산업 발전과 기업 혁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전진하며 진보의 역사를 써내려 갈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기업의 역할이 될 것이다. 기업이 인류 사회 진보의 주체라면, 그 기반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 할 수 있다. 기업가정신은 혁신과 창조의 원천이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체적 실행이다. 기업가정신 없이는 기술 혁신도, 산업 발전도, 사회 변혁도 불가능하다. 기업가정신은 인류 역사를 진보로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기업가정신은 현실적 이상주의
그렇다면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무엇일까? 기업가정신은 단순히 사업 아이템을 고르고, 자금을 조달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업가정신의 핵심에는 불굴성과 혁신성이 자리 잡고 있다. 전기의 발명으로 인류에 밝은 빛을 선물한 토머스 에디슨과 혁신적인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은 스티브 잡스, 두 기업가의 공통점은 불굴의 정신과 혁신적 사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냈다는 것이다.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9,999가지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며 실패를 성공으로 가는 과정으로 여겼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은 전기 조명이라는 혁신적 가치를 인류에게 선사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업한 후 쫓겨났지만, 결국 다시 애플로 돌아와 혁신적인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혁신적 사고로 매킨토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탄생시켰다. 잡스의 집요한 완벽주의와 혁신적 사고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우리의 일상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다.
에디슨과 잡스의 사례는 기업가정신의 핵심이 불굴성과 혁신성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굴성은 어떤 난관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으로 드러난다.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은 ‘될 때까지 한다’는 신념 하나로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간다. 다음으로 혁신성의 핵심은 기존의 요소들을 재조합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있다. 혁신적 기업가들은 미래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기술, 제품, 생산성을 혁신하고 시장을 개척한다.
불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적 혁신은 사회적 책임과 결부될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완성될 수 있다. 기업의 혁신은 사회 전반의 변혁으로 이어진다. 기업가들은 결코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혁신적 가치를 창조한다. 혁신의 방향을 사회적 가치 창출에 맞춤으로써 기업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낸다.
기업가정신은 단순한 경영 철학이 아니고 액자 속에 박제된 이념적 문구도 아니다. 기업가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은 더더욱 아니다.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기업가정신은 과학도 예술도 아닌 ‘경영의 실제(practice)’다. 기업가정신은 아이디어나 신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발전을 위해 경영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실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기업가정신은 경영 현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력의 에너지로 기업과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실질적인 등불로 작용하며 빛을 발한다.
세상은 제어하기 힘든 수많은 변수가 역동적이고 불규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성공에 이르는 경로도 구불구불하기 마련이다. 경영 현장은 말할 것도 없다. 비전을 갖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노력과 실천은 별개의 일이다. 비전은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적으로 대응하는 지속적 실행을 통해 비로소 실제적 현실이 된다.
비전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래 가치는 주어지는 현재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래서 기업가는 현실의 최선을 통해 미래의 최상을 꿈꾸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여야 한다. 현실과 이상은 반대말이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통해서만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 현실에 발 딛지 않은 이상은 공허하고, 이상 없는 현실은 허무하다. 기업가는 하늘을 목표로 하되 발은 늘 땅에 딛고 한 걸음씩 오늘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 이상주의자로서 기업가는 언제나 경계에 선다. 질서와 혼돈, 이치와 가치, 본질과 실용, 이기와 이타를 오가며 그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들이 바로 ‘기업가’라는 경계인이다. 현실과 이상을 오가는 경계인은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계인에게 흔들림은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찾고 만들어가는 움직임이다. 이탈하지 않으려면 매 순간 자신의 위치를 수정하며 진북을 향하려는 나침반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
위대한 기업가의 길
기업가는 상대적으로 능력이 많은 사람이다. 가장 전인적인(holistic) 존재로 기업가를 꼽기도 한다. 이러한 기업가의 능력은 누구의 것일까? 그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재능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갈고 닦아진 것이다. 기업가의 능력도 사회로부터 얻은 것이니 당연히 사회의 것이다.그렇다면 기업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기술과 제품은 어떨까?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의 손에 쥐인 스마트폰 하나에도 많은 이들의 노력과 더불어 인류의 집단지성이 응축되어 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비롯한 다양한 전자공학 이론과 기술의 개발, 그리고 전화기의 발명, 컴퓨터의 진화, 인터넷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아이폰 역시 이러한 인류 공동의 과학적 자산과 기술적 결실 위에서 탄생한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내 것이라 할 것도 없다. 오직 과거로부터 빌려와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낼 뿐이다.
기업이 창출하는 부도 사회의 것이다. 법적으로는 개인의 소유로 인정되지만, 그것은 영구적 소유권이 아닌 자원을 운용할 수 있는 일시적 집행권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구도 부를 가지고 죽음을 넘어설 수 없다. 노숙자도, 억만장자도 결국 동일한 유기물질로 돌아간다.
우리는 유전자풀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개인의 성취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도 사실은 수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축적되고 전달된 결과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자원, 이를 통해 만들어낸 성과는 모두 사회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개인 소유 이전에 사회적 공동 자산이다.
그러면 기업가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기업에서 훌륭한 기업으로, 다시 위대한 기업으로 부단히 나아가는 것이다. 좋은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통해 구성원의 행복을 책임진다. 훌륭한 기업은 친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한다. 위대한 기업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유산을 남김으로써 시대를 초월하여 영속한다. 기업의 가치는 경제적 수준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위대한 기업으로 가기 위한 진정한 가치는 시간에 녹슬지 않고 세월에 바래지 않는 것이다.
위대함은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다. 위대한 기업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이 되는 올바른 가치를 추구한다. 진정한 위대함은 올바른 가치를 찾고 묵묵히 행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오늘의 발걸음에 있다. 그 길은 분명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겠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용기 내어 그 길을 가는 것만이 기업가의 가장 값진 성취이자 가장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삶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는 완성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택한 수단적 이념이지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인본(人本)’이다. 인본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의 선을,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의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가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생존의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면서 공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인류는 공생을 통해 민족, 국가, 인종을 함께 아우르는 공존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생존과 공생을 넘어 공존으로 향하는 그 변화의 중심에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위대한 기업으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할 가치는 ‘공존’이다. 그것은 현실적 이상주의자로서 기업가가 품어야 할 나침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기업의 진정한 역할과 함께 기업가로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업가는 자신을 태워 미래를 밝히는 선각자이자 선지자이며, 세상의 중심에서 불굴의 용기로 세상을 밝히는 선구자다. 다음의 시를 기업가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며 글을 마칠까 한다.
경영자의 길
경영자란본질로부터 실용을 만들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경영자는
정체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자이고
안주하지 않고 세상을 열어가는 개척자이며
현재보다 앞서 미래를 지향하는 선구자입니다
삶의 이치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는 철학자이고
미지의 현상을 연구하고 규명하는 과학자이며
창의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입니다그러므로 경영자는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선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상의 주역입니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6월 21일자에 게재된 한경에세이 ‘기업가는 현실적 이상주의자다’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