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하우스는 상상력을 자극할 뿐이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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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우리 주변의 사물과 공간은 목적에 적합한 스케일-규모를 가진다. 이는 무엇보다 사용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늘 쓰던 책상의 높이가 2cm만 높아져도 우리는 바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일상적 장면들의 시각적 익숙함 또한 여기에서부터 형성된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The Listening Room>은 이러한 스케일의 문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 안을 커다란 사과가 꽉 채우고 있는 그림을 보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이 그림을 보고 당혹감이라는 감정을 느낄 것이고, 이 당혹감은 당연히 사과의 크기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초현실'적인 현상은 익숙한 사물의 스케일 변화만으로도 쉽게 가능해진다.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장난감이라 할 수 있는 레고는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블록을 기본 단위로 가진다. 이것을 하나하나 쌓아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행위가 많은 이들에게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건축적 행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레고를 가지고 놀아본 사람들은 작은 블록을 쌓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상을 했을 것이고, 그 블록들이 상상 속에서는 실제 벽돌과 다르지 않음을 알 것이다. 만약 블록들이 실제 크기만 했다면 레고를 장난감이라고 하거나, 이것을 쌓는 행위를 단순히 놀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레고가 정말로 실제 세계의 스케일로 나타난다면 어떨까.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Billund)은 레고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으로 레고 본사, 생산공장, 레고랜드 등이 위치한, 레고의 생산부터 경험까지 모두 가능한 곳이다.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레고에 고용되어 있으며 레고가 창출하는 관광 효과는 지역 활성화의 원동력이 된다. 이곳에 2017년 들어선 '레고하우스'는 레고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을 건물의 외관에서부터 방문객들에게 전달한다.21개의 블록을 쌓아 올린 듯한 건물은 피라미드처럼 중심부가 정상이 되는 형태를 가지며 블록들끼리 별도의 구조체 없이 서로 지탱하는 듯이 보인다. 땅 위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백색의 블록들이 웅장하게 쌓여있는 것 같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블록들의 각 옥상에 레고의 대표색들인 빨강, 파랑, 노랑, 초록색이 칠해져 있어 이들이 레고의 조합이라는 것이 직관적으로 인지된다. 매스의 외벽을 마감하고 있는 타일 역시 레고의 상징적인 2X4 브릭의 비율을 활용하여 건물 자체가 레고의 조합이라는 인지성을 높인다.이 중 파란색과 노란색 영역을 구성하는 매스들 중 하나씩이 계단의 형태로 녹아내려 레고하우스를 이루는 매스이자 오가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 그리고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되기도 한다. 땅의 레벨에 놓인 매스들은 중앙의 빈 공간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위치하였고 이들의 위에 상층의 매스들이 놓이는 방식으로 건물이 형성되어 기둥도 없는 거대한 공간이 블록들의 안쪽에 형성된다. 이곳에는 카페, 레고스토어, 컨퍼런스 공간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블록 사이사이 빈틈을 통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다. 블록들이 모여 형성한 건물의 형태, 블록 아래에 자리한 공용공간은 이처럼 방문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여 모두를 환영한다. 누구나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레고가 현실 세계에 그대로 형상화된 것이다.블록들의 내부는 그야말로 레고의 천국이다. 외부에서 블록들이 겹치며 쌓이는 방식으로 건물을 형성했다면, 내부에서는 이 블록들의 겹침이 그대로 보이며 연속된 매스들에 의해 체험형 전시 공간이 형성된다. 이곳에서는 레고로 만들어진 다양한 조형물들이 시선을 사로잡고, 레고로 채워진 풀에 뛰어들어 마음대로 조립할 수도 있다. 각각의 전시 공간에는 블록 옥상의 색상들이 그대로 연장되어 색에 따라 구분되는 영역을 형성하며, 이 색상마다 체험이 지향하는 바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놀이를 기반으로 하는 체험들은 빨강은 창의성, 노랑은 정서, 초록은 사회성, 파랑은 인지능력과 관계된다. 하지만 원색이 두드러지는 공간과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레고들, 그리고 신나게 그것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보면 색의 구분이 무색하게 그저 즐거운 레고 속 세상이다.건물의 가장 상층부에 위치한 마스터피스 갤러리에서는 전 세계 레고 팬들이 만든 각종 레고 모형이 전시된다. 이곳은 레고하우스 곳곳에서 발견되는 2X4 브릭의 비율과 형태가 그대로 확장된 공간으로, 형태적으로도, 위치적으로도 레고하우스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이 블록의 옥상에서는 빌룬의 경관을 모든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레고하우스는 외부에서는 지역사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내부에서는 레고로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레고하우스의 공간에 대해 지금까지 구구절절 설명하였지만 사실 이곳은 의미를 찾는 것도, 설명을 보태는 것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설명과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놀이, 그리고 상상의 영역을 현실 그대로 옮겨낸 초현실적 개체로서의 의미가 더 높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어린 시절 우리가 놀 때 빨간색은, 혹은 파란색은 무슨 의미인지 굳이 따지고 놀지 않았고 놀이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었겠나. 그처럼 레고하우스에서는 저 픽셀처럼 보이는 계단을 그냥 뛰어다니고 싶고, 저 블록 매스들이 움직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상상력이 자극될 뿐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덴마크 빌룬(Billund)의 레고하우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