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라인야후 사태의 출발점과 종착점

국가안보, 보호주의 정당화 도구 돼
다자간 국제무역 규범 복원돼야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얼마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라인야후 사태가 외견상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을 일본 정부의 압력에 따라 강제적으로 매각하지는 않는 쪽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자연스럽게 라인을 둘러싼 논란도 마무리되는 형국이다. 네이버에서 관리하던 일본 라인 사용자들의 데이터도 모두 일본으로 넘기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봉합되는 듯이 보이지만 정작 이런 유사한 사태가 얼마나 자주, 어떤 규모로 재발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세간의 우려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번 라인야후 사태의 시발점을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분석은 그 종착점에 대한 그림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한·일 간에는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마찰이 이어졌다. 일본 정치인의 주기적인 신사 참배나 한·일 간 역사를 둘러싼 갈등, 독도 영유권 분쟁 등은 익숙한 모습이다. 반면 라인야후의 거버넌스 구조에 관한 갈등은 기존 대립상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번 사태는 라인야후 사용자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정보보안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에서 시작됐다. 단순한 행정 절차로 보였던 문제가 네이버가 보유한 라인야후 지분을 매각하는 이슈로 순식간에 비화했다. 한국 내 여론이 일본 정부의 기업 경영권 침탈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파장은 더욱 확산했다.이에 한국 정부는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지분 강제 매각은 없는 대신 일본이 우려하는 데이터 안보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 사용자의 데이터 및 데이터 관리권을 모두 일본에 이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 결과 라인야후 이사진은 모두 일본 측 이사진으로 교체됐다. 데이터 보유 및 관리권도 야후 측에 이관됐다. 당초 행정지도를 시작할 때 일본 정부가 세운 목표는 충분히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대목은 앞으로도 국가안보와 정보 및 문화적 주권 보호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보호주의적 정책이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2017년 출범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4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을 필두로, 최근 틱톡 서비스를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강요한 것까지 주요국에서 국가안보가 모든 보호주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마술봉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결과 심해진 빈부격차와 실직·소득 감소 등으로 분노가 커진 근로자 등 소외층을 등에 업고 집권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세계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모델로 부상하면서, 급기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정권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을 흉내 내고 나선 것이다.한편 세계 주요 국가가 모두 국가안보를 빌미로 보호주의 정책을 남용하면 결과적으로 규범에 기반한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경제 질서가 붕괴할 것이다. 그 경우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가장 먼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런 만큼 이런 실존적 위기를 공유하는 독일 등 유럽 주요국과 국제무역 규범 복원을 위한 국제적인 정책 공조 노력을 진행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지금 바로, 안보를 빌미로 한 무차별적인 보호주의 정책이라는 치킨게임이 아닌, 다자간 국제무역 규범 복원을 위한 국제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제정책 공조를 통한 국제무역 질서 복원의 물꼬를 트는 노력은 우리 경제 생존을 위해 지금 감당해야 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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