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세제 개편 논쟁에서 사라진 여당
입력
수정
지면A34
도병욱 정치부 차장지난 16일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하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30% 내외로 낮추자는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발언은 후폭풍이 컸다. 더불어민주당은 성 실장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를 소환해 ‘재정 파탄 청문회’를 열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채무를 660조원에서 1068조원으로 늘려놓은 민주당이 재정 파탄의 책임을 이번 정부에 묻겠다고 벼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여당 종부세 폐지법 발의는 1명
하지만 22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 세제 개편을 이슈로 끌어올린 건 예상과 달리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지난달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면제를 거론한 게 시작이었다. 같은 달 24일 고민정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종부세 폐지를 제안했다. 박성준 임광현 등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국민 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거들었다. 부자들을 겨냥해 도입한 세제가 중산층에도 영향을 미치자 표심에 예민한 민주당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21대 국회에서 앞장서 감세 법안을 추진한 국민의힘에서는 이 기간 어떤 발언이 나왔을까. 추경호 원내대표와 당내 재정세제개편특위를 이끌고 있는 송언석 의원 등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이 종부세 및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원론적 언급만 했다. 두 사람을 빼면 김은혜 의원이 종부세 폐지 법안을 발의하고 상속세 완화 관련 법안도 곧 내놓겠다고 밝힌 게 전부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얻은 108석은 충분히 큰 숫자”라는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의 호언장담이 무색할 정도다.보다 못한 정부 인사들이 나섰다. 지난달 31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익명으로 종부세 폐지를 언급했고, 지난 10일에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종부세를 폐지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다 16일 성태윤 실장의 발언이 나왔다.
정책 논의보다 당권 다툼
여당 의원들이 아닌 대통령실 참모 및 장관이 먼저 움직이면서 정부 스텝은 꼬였다. 다음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책실장의 발언을 두고 “확정된 안은 아니고 검토 가능한 대안”이라며 의미를 축소해야 했다. 다음달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확정된 방안이 없는 최 부총리 입장에선 성 실장의 발언에 맞장구를 칠 수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 핵심 참모인 정책실장의 발언을 마냥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이 나서자 종부세와 상속세를 개편하자고 먼저 목소리를 내던 야당이 갑자기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돌아섰다는 점이다. 여권에선 국민의힘이 총대를 메고 야당과의 세제 개편 논의를 주도했다면 지금과는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그동안 여당 의원들은 무얼 했을까. 당내 의원들끼리는 전당대회 2위 득표자를 수석최고위원으로 두는 방안을 놓고 다퉜다. 야당과는 상임위 배정을 놓고 싸우고 있다. 최근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에 김경율 최고위원을 누가 데려왔는지를 놓고 내부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유능한 정책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거야(巨野)의 폭주를 탓하려면 적어도 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