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특세 20% 떼고, 건물투자는 제외…반도체 실질 공제율 10%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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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세액공제, 미국의 8분의 1 수준25%. 정부가 주장하는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이다. 반도체 기업이 건물·설비에 1조원을 투자하면 미국처럼 2500억원을 돌려준다는 얘기다. 진짜일까.
세액공제 25% 뜯어보니…
장비·클린룸 등 설비만 공제대상
5년간 10조원 투자 가정하면
농특세 내고나면 실제론 3080억
투자 집행 다음해 稅혜택 '시차'도
"삼성·SK 프로젝트 줄줄이 대기
보조금 없으면 일몰 연장해야"
산업계 얘기는 다르다. 실질 공제율은 ‘10% 이하’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투자를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기업이란 이유로 15% 공제율을 적용받는다. 중소기업 공제율은 25%지만 반도체업계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이게 다가 아니다. 건물에 대한 투자 금액은 세액공제 대상에서 빠진다. 하나 더. 세금 감면액의 20%는 농어촌특별세 명목으로 다시 뱉어내야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다시 계산하면 1조원을 투자했을 때 감면액은 1000억원이 안 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반도체 세액공제율이 미국(25%)과 똑같다고 하지만 실제론 턱없이 낮다”며 “현금 보조금까지 감안하면 대규모 반도체 투자에 대한 미국의 총지원 규모는 한국의 세 배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40%에 못 미치는 지원금
한국경제신문은 20일 국내 반도체기업 A사에 의뢰해 10조원(건물투자 3조원·설비투자 7조원)을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첨단 반도체 공장·시설에 투자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액을 조사했다. 한국에선 연말 일몰되는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등의 연장 여부에 따라 최소 3080억원에서 9867억원, 미국에선 2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베스트 시나리오에서도 한국의 세액공제액은 미국의 39.4%에 그쳤다.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세액공제 대상. 미국은 사무동을 제외한 건물 투자 금액도 세액공제 대상에 넣지만 한국은 장비, 클린룸 등 설비 투자액만 감면해준다. 세액공제 대상이 미국은 전체 투자액인 10조원인데 한국은 건물 투자액(3조원)을 뺀 7조원이란 얘기다.농특세도 세액공제액 격차를 벌리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선 투자세액공제 환급액의 20%를 농특세로 내야 한다.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돌려준 세금을 농어업 경쟁력 강화, 농어촌 환경 개선을 위해 다시 토해내라는 것이다. 베스트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감면액이 9867억원에 그치는 것은 세액공제를 적용해 산출한 환급액(1조2333억원)의 20%인 2467억원을 정부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 2030년까지 연장 필요
반도체업계는 “정부가 미국 유럽 일본 대만처럼 현금 보조금은 주지 않더라도 세제 혜택 기간을 2030년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4~6공장을 완공할 예정이고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M15X와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공장 신축을 계획하고 있다. 회사마다 50조~100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완공하는 데 5~6년이 걸리는 만큼 이 기간만이라도 세제 혜택을 유지해 투자 유인을 높여달라는 얘기다.반도체 기업을 농특세 납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반도체 기업 지원 효과를 반감하는 불합리한 제도는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세금을 깎아주는 시점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투자세액공제는 투자를 집행한 이듬해에 납부할 법인세를 경감해주는 제도다. 적자를 내 법인세 과세 기준이 되는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이 없으면 아무리 대규모로 투자해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흑자를 내도 다음 해에 돌려받는 만큼 정작 목돈이 들 때는 지원받지 못한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주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반도체 기업 고위 관계자는 “한국은 현금 보조금도 없고 세제 혜택도 경쟁국보다 약하다”며 “투자세액공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개선책이 지원 방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