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난해한 '개념미술' 내려놨다

서울대미술관 기획전 '미적감각'
김용식 김홍주 등 12명 작품 100여점 전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 전경. /서울대미술관 홈페이지 캡처
서울 남부와 경기를 가로지르는 관악산 아랫목.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은 강의실도 연구실도 아니다. 네덜란드의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설계한 서울대미술관이다.

미술관이 대학 초입 '목 좋은 곳'에 들어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화 시민과 미술계, 그리고 미래를 책임질 미술학도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맡기 위해서다. 2006년 '현대미술로의 초대'전을 시작으로 동시대 미술에 대해 반성과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이곳에서 꾸준히 열려온 이유다.
'미적감각(美的感覺)' 전시 전경 /서울대미술관 제공
최근 서울대미술관이 개최한 기획전 '미적감각'도 현대미술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오늘날 유행하는 난해한 개념미술도, 관객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소수자 예술도 아니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며 한눈에 봐도 '보기 좋은' 작품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전시를 기획한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 앞에서 감정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언제인가. 어쩌면 우리는 작품의 해석에 몰두한 나머지, 작품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감각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김용식, '영원과 한계 1603', 2016, 캔버스에 아크릴릭. /서울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1945년생 김홍주부터 1990년생 이나하까지 작가 12명의 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 반세기 넘는 세대 차이를 아우르는 건 세밀한 묘사력, 조화로운 화면 구성과 색감 등 직관적인 아름다움이다.이들의 작업은 우리 주변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김용식 작가의 '영원과 한계' 연작이 가장 먼저 관객을 반긴다. 산딸기와 라일락 등 화초를 3m 너비의 대형 캔버스에 확대해 그렸다. 주변의 이끼와 거미줄마저도 작품의 일부다. 가느다란 선을 수백번 쌓아 올리며 완성되는 김홍주의 꽃 그림도 빼놓을 수 없다.
김홍주, '무제', 1996, 캔버스에 아크릴릭, 1843x1843(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울대미술관 제공
대상에 감각을 집중시키면 익숙한 대상도 달리 보인다. 제주의 건축물을 촬영하는 박근주의 작품이 단적인 예다. 건물의 전경이 아니라 일부분에 집중해 촬영한 작품은 기하학적 추상화에 가까운 모습이다. 어떠한 그래픽 작업도 거치지 않은 사진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박근주, 'MIX', 2021, 피그먼트 프린트, 76x76cm. /서울대미술관 제공
전시는 미각부터 청각, 촉각까지 관객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운다. 이페로의 케이크 연작으로 입맛을 다실 때쯤, 거친 쇳가루를 입힌 염지희의 회화가 나타난다. 폐기물을 재활용한 유화수의 키네틱 조각, 철근이 노출된 전가빈의 신데렐라 동상이 전시장에 율동을 불러일으킨다.
이페로, '붉은 여왕',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파스텔, 유채, 라인테이프, 1935x260cm. /서울대미술관 제공
전시는 인터넷 쇼핑을 모티프로 한 박윤주의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생활하기 위한 소비활동 전반을 묘사했다. 종종 '속물적인 것'으로 격하되곤 한 인간의 감각을 환기하는 작업이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감각은 그동안 야만적이고, 때론 불필요한 것으로까지 여겨졌다"며 "개념미술이 주도하는 현대미술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하 3층~지상 3층의 널찍한 미술관 공간은 감각을 활짝 열기 충분한 규모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미적감각(美的感覺)' 전시 전경 /서울대미술관 제공
안시욱 기자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