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에 켜켜이 쌓인 왕조의 시간…신간 '궁궐의 고목나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옛 그림·사진과 함께 궁궐 나무 소개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관람로 양쪽에 나란히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 8그루가 눈길을 끈다. 나무의 키는 15∼16m, 수령은 300∼400여년.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나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인 '동궐도(東闕圖)에는 이 회화나무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조선 왕조의 역사가 숨 쉬는 궁궐과 함께한 고목인 셈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책 '궁궐의 고목나무'는 이처럼 조선의 4대 궁궐과 역사를 함께한 나무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궐도'를 비롯해 옛 그림과 사진에 남은 나무를 찾아가는 답사다.
박 교수는 오랜 기간 말없이 궁궐을 지켜온 고목과 관련해 "수백 년 역사의 현장 지킴이로서 궁궐의 희로애락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자리에서 나라의 대소사는 물론 임금님 가족의 희로애락까지 지켜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궁궐의 고목나무는 나름의 사연이 많다.

"
책은 돈화문 행랑 주변의 회화나무, 임금의 어진(御眞·왕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봉안했던 선원전의 측백나무, 후원 부용지의 진달래밭 등 다양한 나무를 다룬다.
대형 칠판보다 더 큰 크기로 그려진 '동궐도' 속 나무를 찾아 실제 모습을 비교하고 궁중에서 나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에 얽힌 사연은 없는지 찬찬히 짚는다.

예컨대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서 궁궐 담장을 따라 100m 정도 걷다 보면 만나는 선인문 앞 회화나무는 어떤 나무보다 사연이 많다.

줄기가 갈라지고 구부정한 이 나무는 사도세자(1735∼1762)가 아버지인 영조(재위 1724∼1776)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어간 비극을 모두 지켜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창덕궁, 창경궁과 달리 경복궁, 덕수궁에는 비교적 어린나무가 많다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여러 이유로 궁궐이 훼손된 탓이다.

경복궁의 경우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1929년 조선박람회 등이 열리며 궁궐 전각 대부분이 철거됐고 나무들도 거의 사라졌다.

덕수궁에서는 1904년 발생한 대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

책은 경복궁 후원에 해당하는 청와대 일대와 종묘에 자리한 고목, 옛 그림과 사진으로만 남은 나무 등도 소개한다.

주요 고목을 표시한 지도도 있어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눌와. 35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