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한나라에 쫓긴 흉노, 서쪽으로 가서 로마 몰락 불러

(39) 흉노와 게르만족의 대이동

한나라, 흉노와 전쟁 선포했다 실패
141년 후 고비사막 북쪽으로 밀어내

흩어졌던 흉노, 370년 무렵 동유럽에
흉노에 쫓긴 게르만족 대이동 시작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시켜
추운 곳에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왼쪽)는 열대지방 벵골 호랑이(오른쪽)에 비해 평균 1.5배 가까이 크다. 앨런의 법칙도 있다. 항온동물의 경우 추운 지역에 사는 것이 더운 곳에 사는 것보다 팔, 다리, 귀, 코 같은 몸의 말단 부위가 작다는 주장이다. /Getty Images Bank
기원전 202년 중국 한나라가 건국한다. 야심 차게 나라를 세웠지만, 실력은 별로였다. 중앙만 황제가 통치하고 지방은 10여 개 제후국이 다스렸다. 중국을 통일했다는 표현이 맞나 싶다. 한족 왕조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북방의 유목 기마민족과의 우열 관계다. 당시 북쪽에는 흉노 제국이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세계 최초의 유목 제국이다. 서쪽의 스키타이가 부족 연맹의 성격이 강했다면 흉노는 중앙집권체제였기 때문이다. 중원의 통일은 북방 민족에게는 좋은 일 반, 나쁜 일 반이다. 나쁜 것은 서역 무역 루트의 경쟁 세력 등장이요, 좋은 것은 창구 단일화다. 여럿으로 쪼개져 있으면 털어먹을 때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 때려야 하지만, 하나로 모여 있으면 거래 비용이 절감된다. 해마다 겨울나기 용품을 털어가던 흉노는 한고조에게 체면 문제이기도 했다. 한고조는 흉노와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자기까지 포로 직전 상황으로 몰리면서 스타일을 구긴다. 결국 흉노와 화친을 맺는데, 말이 화친이지 사실상 조공 관계였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기원전 141년 유철이 제7대 황제로 즉위하면서다. 무제라고 불리는 인물로, 우리와는 한사군의 설치로 별로 좋은 인연이 아니다.

무제는 50년간 흉노와 전쟁을 치른 끝에 기어이 이들을 고비사막 북쪽으로 밀어낸다. 아무리 기마민족이라도 사막을 건너와 중원을 침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부터 흉노는 내부 분열을 반복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흉노의 재림은 기원후 370년 무렵이다. 다뉴브강을 지키던 로마군 수비대는 새로운 형태의 야만족을 발견한다. 흉노의 일족으로 이들은 동유럽에서 약탈을 마치고 새 먹잇감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로마 조정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로마에 가장 흔한 일이 야만족의 침입이었고, 보고서를 보니 신종 야만족은 몸집도 작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경 근처의 게르만족이 완충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얼마간 소란을 피우다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와 미간에 화살을 박고 사라지는 흉노에게 게르만족 동(東)고트와 서(西)고트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게르만족은 살기 위해 로마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다. 역사가들은 이 일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부른다. 한나라 무제가 흉노를 쫓아버린 사건이 550여 년 후 로마의 몰락을 가져온 셈이다.그로부터 또 몇백 년 후인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 지금의 스웨덴과 덴마크에 거주하던 일단의 무리가 남쪽으로 이동한다. 이를 게르만족의 이동과 대비해 ‘노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하는데, 사실 둘은 뿌리가 같은 종족으로 대이동을 하면서 로마를 무너뜨린 집단은 이들의 선발 주자였다. 고대의 게르만족은 ‘아시아인’같이 뭉뚱그린 개념이다. 로마인들은 알프스 북쪽 이들의 거주 지역을 ‘마그나 게르마니아’라고 불렀는데, 당시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도시 밀집 지역 마그나 그라이키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 유럽의 역사는 사방으로 뻗어나간 게르만족의 역사다.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언어라든지 문화 같은 고차원적인 것도 있겠지만 외형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장(키)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도입부를 보면 거구의 게르만 족장에게 로마군 여럿이 달려드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성인 남성에게 유치원 아이들이 들러붙는 듯한 모습이다. 우두머리 족장이니 체형이 큰 것이기도 하겠지만 로마인이 작아서 그렇다. 고대 로마 남성 평균은 165cm였다(여성은 155cm). 중부 유럽의 게르만족은 175~180cm 정도로 추정된다. 북부 유럽 게르만족은 180cm 이상이다. 항온동물은 같은 종일 경우 추운 지역에 거주할수록 몸집이 크다. 독일 생물학자 베르크만이 발견한 법칙인데, 이는 한반도처럼 세로 길이가 불과 1,000km 안팎인 경우에도 해당한다.

1937년 일제가 징병을 위해 만든 자료에 따르면 장정의 키가 최북단 함경북도는 166cm 이상, 남단은 164cm 미만이다. 당연히 일본 열도 남쪽은 이보다 더 작은데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은 155cm였고,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구한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크다고 기록했는데 과장 약간 보태 사실이었던 것이다(덧붙여 서양인들은 키가 더 큰 조선인이 일본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일본의 단신 원인은 675년 이후 1000년 이상 이어진 육식 금지라는 설이 유력하다. 금지를 해제한 메이지유신은 덕분에 ‘요리 유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21세기 들어 베르크만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으니 북한이다. 2011년 기준 북한 남성 평균이 158cm였다. 당시 남한은 173cm. 지금은 그보다 더 내려갔다고 하는데 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50cm 남짓이란다. 이유는 다 알 것이다. 영양부족으로 인한 발육부진이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통일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라고 한다. 통일 문제는 가난한 동족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도 아니고 한 민족이었으니 마땅히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도 아니다. 신장으로만 보면 통일 문제는 휴머니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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