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무한한 상상력"…AI 명령어 15개면 단편 애니 만든다

슈퍼이지 AI 시대
(1) 개발자 필요 없는 '쉬운 AI' 시대

각본·감독·주연까지 1인 창작
AI 에이전트 두고 '왕좌의 게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했다. AI 스타트업 더시뮬레이션의 ‘쇼러너’ 얘기다. 나와 친구들이 주인공인 외계인 침공 이야기를 들려주고 1~2분만 기다리면 애니메이션이 완성된다. 복잡한 코딩이나 애니메이션 기술 없이 AI를 통해 자신만의 TV쇼를 선보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클릭 투 비디오’ 시대

21일 업계에 따르면 쇼러너는 에드 사치 더시뮬레이션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말 출시한 AI 기반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15개 단어로 이뤄진 프롬프트(명령어)만 있으면 AI가 10~20분 분량의 에피소드를 생성해준다. 모든 콘텐츠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쇼러너는 ‘엑시트 밸리’ ‘리브 비하인드’ 등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10개를 내놨다. 앞으로 ‘AI의 넷플릭스’로 거듭나는 것이 쇼러너의 목표다.

사치 CEO는 “누구나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만 있다면 간단한 명령으로 흥미로운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다”며 “무료 테스트 버전을 통해 5만 건의 콘텐츠를 생성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테크 기업들도 영상 생성 AI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2월 영상 생성 AI 모델 ‘소라’를 공개했다. 문자 명령어를 최대 1분 길이의 고화질 영상으로 변환해준다. 소라는 애니메이션은 물론 현실 세계를 담은 영상까지 만들어준다.구글은 지난달 연례 개발자 회의인 ‘I/O’ 행사에서 동영상 생성 AI 모델 ‘비오’를 공개했다. 소라의 대항마 격으로 올해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데이터클라우드 업체인 스노우플레이크의 슈리다 라마스워미 CEO는 “이제 기술적 한계 없이 상상력만 있으면 모든 걸 구현할 수 있는 AI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복잡한 코딩, 촬영 없이도 영상을 찍어 쓸 수 있는 ‘클릭 투 비디오’ 시대가 시작되면서 관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영상 분야 기술자가 설 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는 ‘풀스택 기획자’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쉬운 AI’가 돈을 번다”

쇼러너 같은 ‘쉬운 AI’가 등장하는 것은 ‘챗GPT’ 효과 때문이다. 오픈AI가 챗GPT의 새로운 버전으로 쉬운 AI의 위력을 증명하면서 빅테크의 개발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웹 분석 전문 시밀러웹에 따르면 오픈AI의 챗GPT 웹사이트는 지난 한 달간 20억 건이 넘는 방문 횟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5월에 세운 18억 건을 넘어서며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이는 지난달 13일 이 회사가 내놓은 ‘GPT-4o’의 영향이다. 음성 대화로 멀티모달 AI 기능을 수행하는 GPT-4o는 출시 이후 오픈AI의 매출 촉진제 역할을 했다.

모바일 분석회사인 앱피규어에 따르면 챗GPT 모바일 앱은 지난달 13~17일 애플스토어와 구글플레이스토어 등 앱 장터에서 총 420만달러(약 5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역대 최대 기록이다. 쉽고 편리한 AI 기능이 등장하자 유료 구독 모델인 ‘챗GPT 플러스’ 가입자가 급증한 영향이다.오픈AI와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구글은 지난달 검색엔진에 제미나이 AI를 적용한 ‘AI 오버뷰(개요)’를 출시해 AI가 알아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주도록 했다. 검색엔진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입지를 사수하기 위해 단행한 변화다. 또한 ‘프로젝트 아스트라’를 공개해 GPT-4o와 같은 멀티모달 AI 음성 챗봇을 올 하반기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구글의 클라우드 부문 자회사인 구글 클라우드는 ‘버텍스 AI 스튜디오’를 통해 AI 모델을 쉽고 빠르게 구축할 수 있게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최근 “AI 모델이 이용자의 맥락을 이해하는 에이전트로 거듭났다”고 했다.

美테크업계에 부는 구조조정 '칼바람'
2035년까지 일자리 3억개 증발"

미국 테크업계에 인공지능(AI)으로 인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사내 직원 업무를 대체하면서 관련 업무를 맡은 직원을 전환 배치하거나 해고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21일 테크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달 초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인 애저 클라우드 사업부에서 수백 명을 해고했다. 감원 대상은 통신사와 네트워크 운영자를 대상으로 하는 애저 포 오퍼레이터팀, 클라우드 프로젝트와 관련 기술 솔루션을 지원하는 미션 엔지니어링팀이다.

한 소식통은 이들 팀에서 최대 1500명이 해고될 수 있다고 전했다. 클라우드 접근성이 쉽고 편리해지자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MS 대변인은 로이터에 “조직 및 인력 조정은 사업 관리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며 “미래를 위해 전략적 성장 영역에 우선순위를 두고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글은 올해 초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의 광고 담당 부서 직원 100여 명을 내보냈다. 유튜브 광고 제작 플랫폼 ‘퍼포먼스 맥스’를 통해 고객사가 직접 클릭 몇 번만으로 맞춤형 광고를 제작할 수 있게 된 영향이다. 최근엔 클라우드 부문에서도 직원 100여 명을 해고했다.

세계 주요 테크 기업의 해고 현황을 추적하는 레이오프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302개 기술 기업이 8만9000여 명을 해고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생성 AI 확산으로 2035년까지 기존 일자리 3억 개가 증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AI가 직원을 일터에서 밀어내는 일은 더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 업무를 사람에게 맡길 이유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일례로 MS의 사무용 AI 비서인 ‘코파일럿 AI 에이전트’는 알아서 회의 내용을 기록·요약해주고, 이메일을 모니터링해 주요 내용을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위기에 처한 것은 현장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멀티모달 AI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사들이 내년부터 잇따라 제품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어서다.

실리콘밸리=최진석/송영찬 특파원 iskra@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