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다리다 망할판…바이오 'IPO 덫'

유동성 위기 부르는 거래소 '늑장 심사"
바이오·헬스케어 업종 심사기간 두 배로 길어져
IPO 자진철회 속출…상장실패 낙인 찍히기도
글로벌 제약회사와 경쟁할 만한 신약을 개발하던 A사는 코스닥시장 상장에 나섰다가 한국거래소의 ‘늑장 심사’로 자금 조달 계획이 꼬여 위기를 맞았다. 상장 예비심사 기간이 10개월 이상 길어지면서 연구개발(R&D)에 차질이 생겼다. 심사 기간에 외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해서다. 결국 상장 심사를 자진 철회했지만 자본시장에서 상장 실패라는 낙인이 찍혔다.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사도 투자를 외면했다. A사뿐 아니다. 한국거래소의 늑장 심사로 기업공개(IPO)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바이오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가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예비심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 말까지 심사 결과를 통보받은 코스닥시장 기업은 45곳으로 이 중 45영업일 안에 심사를 완료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상장 첫 관문인 상장예비심사 기간은 규정상 45영업일(약 두 달) 안에 마쳐야 하지만, 올 들어 이 규정이 지켜진 사례가 없었다. 규정을 지킨 사례는 2021년 상반기 10곳에서 2022년 5곳, 2023년 4곳 등으로 계속 감소했다.

업종별 상장 심사 기간은 바이오·헬스케어 13곳이 평균 126.4영업일(약 7개월)로 가장 오래 걸렸다. 이어 서비스업 3곳은 116.6영업일(6개월), 제조업 22곳은 95.9영업일(5개월), 소프트웨어개발업 7곳은 90영업일(5개월) 등이 소요됐다. 바이오·헬스케어 업종은 2021년 상반기(66.2영업일)에 비해 3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다. 노브메타파마 173영업일, 피노바이오 181영업일 등이다. 상장 문턱을 통과한 세포·유전자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이엔셀도 173영업일이 걸렸다. 주관사 선정, 실사 등 상장 준비 단계부터 따지면 상장까지 꼬박 2년이 걸린 셈이다.

한국거래소 심사 문턱이 높아진 것은 지난해 11월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이 빚어지면서다. 한 VC 대표는 “IPO 위축은 투자 회수 차질, 투자 경색, 업계 성장 저해 등 악순환으로 이어져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바이오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안대규/남정민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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