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없으면 큰일날 판"…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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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2023년 R&D 스코어보드' 발표작년 한해 국내 연구개발(R&D)투자 상위 1000대 기업들은 매출액 감소에도 R&D 투자액을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경기 여건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다. 하지만 상위 2~10위 기업의 전체 투자액을 합쳐도 1위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할 정도의 ‘삼성 의존’ 현상은 여전했다.
2023년 1000대 기업 R&D 투자 8.7% 증가한 72조5000억원
10대 기업이 62.7% 차지…50대 기업은 78.1%
부동의 1위 삼성전자 23조9000억원 투자해 32.9% 기록
10대 기업 구성 8개 그룹에서 4개 그룹으로 양극화
글로벌 1000대 기업엔 47곳만 이름 올려
미국(827개), 중국(679개)의 10분의1도 안돼
○매출 감소에서 R&D투자 8.7%↑
2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발표한 ‘R&D 투자 기업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000대 기업의 R&D 투자액은 전년보다 5조8000억원(8.7%) 늘어난 72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2021년 60조원대를 돌파한 뒤 2년 만에 70조원대를 돌파했다.투자 규모가 늘면서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중도 2022년 3.9%에서 지난해 4.4%로 증가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2014년 3.4%에서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한국 기업의 R&D 투자가 규모 측면에선 견조하게 성장했지만 ‘고질병’이라 불리는 주요 기업 쏠림은 그대로다. 투자 규모 상위 10대 기업의 R&D 투자액은 45조5000억원, 50대 기업의 투자액은 56조6000억원에 달했다. 각각 1000대 기업 전체 R&D 투자액의 62.7%, 78.1% 수준이다.
투자액이 1조원 이상인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LG전자 등 9개에 그쳤다. 1위 삼성전자의 투자액은 23조9000억원으로 1000대 기업 전체 투자액의 32.9%에 달했다. 2~10위 기업의 투자액(21조6000억원)을 더해도 1위 한 곳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2009년에도 R&D 투자액 1위였던 삼성전자의 비중은 29.8%로 작년(32.9%)에 비해 3%포인트 가량 작았다. 당시 2~10위 기업 투자 합계액은 삼성전자보다 컸다. 2009년 10대 기업 중 삼성그룹 계열사가 삼성전자 한 곳이었지만 2023년엔 삼성디스플레이(5위), 삼성에스디아이(9위)등 세 곳으로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국내 R&D의 삼성 의존도가 더욱 커진 셈이다.
꼭 삼성이 아니더라도 10대 기업의 구성에서도 4대 그룹 쏠림이 오히려 심화됐다. 2009년 투자 상위 1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삼성전자, LG, 현대차, SK(하이닉스, SK, 텔레콤), 포스코, 한국전력, KT, 두산까지 8곳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2023년엔 다양성이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SDI), 현대차(현대차, 기아, 모비스), SK하이닉스, LG(전자, 디스플레이, 에너지솔루션)등 4대 그룹으로 줄었다.
○글로벌 순위 대만보다도 낮은 9위
기업 규모별로 보면 1000대 중견 기업의 부상이 돋보였다. 상위 1000대 기업 중 대기업은 171개, 중견기업이 491개, 중소기업이 338개로 나타났다. 중견기업 중에선 엔씨소프트(4671억원, 17위), 한국항공우주산업(4088억원, 19위), 중소기업 중에서는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797억원, 69위)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407개였던 중견기업이 약 10년 사이 84개가 증가한 것이 이번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특징이다. 중견기업은 투자 상위 100대 기업 중 33곳을 차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혁신 생태계에서 중견기업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한국 기업들의 R&D투자가 늘곤 있지만 세계 순위에선 뒷걸음질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윈회 연구혁신총국이 작년 말 내놓은 ‘EU 산업 R&D 투자 스코어보드’에서 2022년 기준 글로벌 투자 상위 2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47개에 불과했다. 2021년 53개에서 되려 6개가 줄었다.
이는 미국(827개), 중국(679개), 일본(229개), 독일(113개) 등 주요국뿐만 아니라 대만(77개)에도 뒤진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50위권에는 삼성전자(7위)만 포함됐다. 기준이 다소 상이하지만 2009년 영국 정부가 분석한 1000대 기업 R&D 스코어보드에서 글로벌 10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23개로 중국(16개)보다 많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기업 순위에서 중국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한 셈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의 2023년 1000대 기업 R&D 투자액은 2022년 기준 중국 679개 기업투자액 301조원의 약 4분의1, 미국 827개 기업 투자액 715조원의 약 10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이민우 산업부 산업기술융합정책관은 “기업 R&D투자 증가는 산업기술 혁신을 견인했지만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국내 기업의 R&D 투자액은 매우 적은 편”이라며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차세대 기술, 도전, 혁신 분야에 대해선 정부의 마중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