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판매 둔화에도 끄덕없다…배터리 수요 폭증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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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세계 주요국에서 전기 가격이 0 이하로 떨어지는 '마이너스 전기(negative price)'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력망에 연결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할 정도로 너무 많아지면서다. 이에 과잉 공급되는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수요 피크 시간대에 판매하는 배터리저장장치(BESS)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일각에선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도 BESS 열풍에 따라 배터리 수요는 끄덕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마이너스 전기 현상은 독일이 태양광·풍력 발전을 강화한 2008년 처음 발생했다. 이후 한동안은 비교적 드물게 일어나는 일로 여겨졌으나, 지난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은 뒤 러시아산 화석연료 자원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솔라파워 유럽은 "지난해에만 하루 평균 30만6000개의 태양광 패널이 추가로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로 인해 재생에너지 발전의 효율성이 개선된 측면도 있다.
유럽에너지거래소(EEX)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을 기준으로 2022년 121시간 정도에 불과했던 마이너스 전기 사태는 지난해 542시간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지난달에 이미 513시간을 찍었다. 지난 몇 년 새 태양광 투자를 늘린 스페인은 올해 처음 전기 가격이 0 이하로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산업 컨설팅 업체 모도 에너지는 "영국에서만 향후 3년 안에 마이너스 전기 현상이 발생하는 시간이 1000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블룸버그통신은 "소비자들에게는 무료로 전기가 제공되는 등의 호재로 볼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너무 잦아지면 8000억 달러 규모의 유럽 전력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투자가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재생에너지 투자가 오히려 발전사에 손해를 가져다주는 구조로 이어지면서 추가적인 투자를 꺼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독일 유틸리티 기업 트리아넬의 마르쿠스 해겔 전문가는 로이터통신에 "재생에너지의 성공이 자기잠식화(cannibalization) 현상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주요국 정부와 발전사들은 BESS 확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정부가 출력 제어 완화 조치와 함께 내년까지 30기가와트(GW) 가량 구축하기로 한 BESS 규모를 40GW로 더욱 늘리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연례 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개발사들은 BESS처럼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줄 유연성 자원을 공동 배치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수익이 깎을 수밖에 없다"며 BESS 필요성을 강조했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BESS 용량이 2021년 대비 70배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오로라 에너지 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까지 유럽 전력망에 연결되는 BESS 용량이 현재보다 7배 증가해 50GW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국과 이탈리아, 아일랜드가 유럽 내 BESS 투자 상위 3개 시장이다. 노르웨이 재생에너지 기업 슈타트크라프트의 비르기테 링스타드 바르달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에 "마이너스 전기는 (BESS 시장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며 "BESS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해 BESS 프로젝트에도 사상 첫 세금 공제 혜택을 부여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내 BESS 용량이 최근 1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어 올해 30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추세는 미국 전력 믹스를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 전역의 발전 데이터를 추적하는 그리드 스테이터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는 BESS에 저장돼 있던 전기가 저녁 시간대 전력 수요의 5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
BESS 투자는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더욱 빛을 볼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들이 2030년까지 무탄소 전기 소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는 배터리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지난해 독일선 발전사들이 300시간 넘게 웃돈 얹어서 전기 팔아
22일(현지시간) 전력 시장 감독기관인 ACER에 따르면 유럽에서 지난해 전기 도매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경우가 전년 대비 12배 증가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ACER은 "그간 전력 시장이 대체로 안정적인 편이었던 북유럽 지역에서 발생 빈도가 가장 많았고, 유럽 최대 전력 시장인 독일에선 작년 한 해 동안 300시간 가까이 전기 값이 0이하로 떨어졌다"며 "상당히 폭발적인 증가세"라고 했다. 전기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진다는 것은 발전사들이 거래소에 웃돈을 주면서까지 전기를 판매하고 있다는 의미다.마이너스 전기 현상은 독일이 태양광·풍력 발전을 강화한 2008년 처음 발생했다. 이후 한동안은 비교적 드물게 일어나는 일로 여겨졌으나, 지난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은 뒤 러시아산 화석연료 자원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투자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솔라파워 유럽은 "지난해에만 하루 평균 30만6000개의 태양광 패널이 추가로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로 인해 재생에너지 발전의 효율성이 개선된 측면도 있다.
유럽에너지거래소(EEX)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을 기준으로 2022년 121시간 정도에 불과했던 마이너스 전기 사태는 지난해 542시간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지난달에 이미 513시간을 찍었다. 지난 몇 년 새 태양광 투자를 늘린 스페인은 올해 처음 전기 가격이 0 이하로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산업 컨설팅 업체 모도 에너지는 "영국에서만 향후 3년 안에 마이너스 전기 현상이 발생하는 시간이 1000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블룸버그통신은 "소비자들에게는 무료로 전기가 제공되는 등의 호재로 볼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너무 잦아지면 8000억 달러 규모의 유럽 전력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투자가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재생에너지 투자가 오히려 발전사에 손해를 가져다주는 구조로 이어지면서 추가적인 투자를 꺼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독일 유틸리티 기업 트리아넬의 마르쿠스 해겔 전문가는 로이터통신에 "재생에너지의 성공이 자기잠식화(cannibalization) 현상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전력 수요에 BESS 설치 급증할 수밖에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호주에서도 전체 전력 거래 시간 중 전기 가격이 0 이하로 떨어진 비율이 2018년 이후 계속 증가해 지난해엔 사상 최고치인 14%에 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올 들어 마이너스 전기를 기록한 시간이 4월에 이미 592시간으로 작년 전체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전기가 과잉 생산되는 일이 잦아지자 당국은 발전소들이 출력 제어를 통해 전기 생산을 제한할 수 있는 비중을 기존 5%에서 10%로 높여줬다.이에 주요국 정부와 발전사들은 BESS 확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정부가 출력 제어 완화 조치와 함께 내년까지 30기가와트(GW) 가량 구축하기로 한 BESS 규모를 40GW로 더욱 늘리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연례 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개발사들은 BESS처럼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줄 유연성 자원을 공동 배치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수익이 깎을 수밖에 없다"며 BESS 필요성을 강조했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BESS 용량이 2021년 대비 70배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오로라 에너지 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까지 유럽 전력망에 연결되는 BESS 용량이 현재보다 7배 증가해 50GW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국과 이탈리아, 아일랜드가 유럽 내 BESS 투자 상위 3개 시장이다. 노르웨이 재생에너지 기업 슈타트크라프트의 비르기테 링스타드 바르달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에 "마이너스 전기는 (BESS 시장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며 "BESS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해 BESS 프로젝트에도 사상 첫 세금 공제 혜택을 부여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내 BESS 용량이 최근 1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어 올해 30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추세는 미국 전력 믹스를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 전역의 발전 데이터를 추적하는 그리드 스테이터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는 BESS에 저장돼 있던 전기가 저녁 시간대 전력 수요의 5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
BESS 투자는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더욱 빛을 볼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들이 2030년까지 무탄소 전기 소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는 배터리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