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거에선 금지됐는데…'AI 정치인' 바람 부는 일본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는 지난 13일부터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AI 유니코' 영상을 올리고 있다. 다음달 예정된 도쿄도지사 선거운동에 자신의 외모와 음성을 학습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는 "나는 공무로 바쁘기 때문에 AI 유리코가 대신해 정책 성과를 알릴 것"이라고 했다.

23일 아사히 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쿄도지사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주요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AI 활용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AI 유리코'다. 3선에 도전하는 고이케 지사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성과에 관련된 (홍보는) AI 유리코가 대신할 것"이라고 했다. AI 유리코 계정은 하루 만에 700만건의 접속을 기록하기도 했다. AI 개발자 출신으로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안노 타카히로 후보는 'AI 신문고'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유튜브로 도쿄도민의 의견을 수시로 접수하고 자신의 공약을 학습시킨 AI가 대신 대답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안노 후보는 "내 정치적 입장을 AI에 학습시키면 많은 도쿄도민들과 동시에 의견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공직선거법엔 선거운동에 AI를 적용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 조항이 없다. 입후보자가 자유롭게 AI를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사마 겐미치 일본 메이지대 정보법학과 교수는 아사히 신문을 통해 "(AI를 활용하면) 사람이 직접 유세차를 타거나 전단을 배포할 필요 없기 때문에 선거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청각 장애가 있는 후보자도 AI의 인공음성으로 공약을 발표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 90일 전부터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편집·유포·상영 및 게시를 금지했다. 거짓 정보나 공약을 흘려 공정한 선거를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AI가 선거에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딥페이크 관련 활용을 다 막은 것은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다음 선거부터는 AI를 제대로 감시하면서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때는 AI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텐데 그때도 딥페이크 활용을 모두 규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AI 기술을 통째로 틀어막기보다 악용 사례가 나왔을 때 제재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병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무조건 규제하는 것보다는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검토 후 제재하는 방식이 옳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때는 한국에서도 실제 후보와 똑 닮은 가상 인간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방위로 선거를 지원했다. 대선 후보였던 김동연 경기지사는 영입 인재 1호로 AI 대변인 ‘에이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정치권 평가는 엇갈렸다. 선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건 장점. 하지만 잘 짜인 대본을 학습한 AI가 유권자들에게 ‘착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지난 지방선거 때 윤석열 대통령이 남해군수 후보를 지지하는 영상이 SNS에 돌았는데 가짜로 판명됐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