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베시·한미반도체…AI반도체 '슈퍼 을'로 부상

성능 향상 핵심 된 패키징

장비 주문 몰려 '즐거운 비명'
글로벌 반도체社도 줄세워

패키징 장비 시장 85조 규모
주가도 연일 고공 행진 중
한미반도체 시총 17조5000억
일본 반도체 패키징(여러 칩을 묶어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 장비 업체 디스코의 세키야 가즈마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출장이 잦다. 고객사 경영진을 만나 “원하는 만큼 장비를 납품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최근 패키징 수요가 증가하면서 디스코에 장비 주문이 몰리는데, 생산 능력 한계 때문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인공지능(AI) 반도체 품귀 현상의 원인이 디스코 장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장비 빨리 달라” 줄 서는 고객사

최근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계에서 패키징 전문 장비사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디스코, 네덜란드의 베시(BESI), 한국의 한미반도체 등이 주인공이다.

1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 개발이 한계에 부딪히자 여러 칩을 잘 묶어 성능을 극대화하는 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H100’ 같은 AI 가속기도 패키징을 거쳐 성능이 극대화된 반도체다. 패키징 장비 업체 관계자는 “선금을 줄 테니 생산 라인을 깔고 장비를 충분히 만들어달라는 고객사도 있다”고 말했다.시장의 관심은 주가 상승률 등 지표에서 확인된다. 연초 이후 지난 21일까지 디스코 주가 상승률은 89%로 같은 기간 일본 간판 장비 업체 TEL(45.5%)을 압도한다. 한미반도체는 시가총액이 17조4880억원에 달하며 연초 이후 주가 상승률은 196.6%다.

디스코, 베시, 한미반도체 등이 주목받는 건 패키징 중에서도 각자 ‘전문 분야’에서 오랜 기간 갈고닦은 기술력 덕분이다. 1937년 설립된 디스코는 웨이퍼를 얇게 깎는 ‘그라인더’, 웨이퍼 칩을 자르는 ‘소(saw)’ 관련 장비에서 절대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로 실적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분기 매출은 90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9% 늘었다.

베시는 ASML 뒤를 이을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산업의 희망으로 불린다. 전문 분야는 ‘다이 어태치’ 장비다. 이 장비는 칩을 기판에 붙일 때 쓰이는데 최근엔 칩과 칩을 직접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본딩’에도 활용된다. 지난해 베시의 다이 어태치 장비 시장 점유율은 40%로 세계 1위다.한미반도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작에 필수적인 열압착(TC) 본더 장비 시장의 강자다. D램 칩을 쌓을 때 열과 압력을 가해 칩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한다.

패키징 장비 시장 성장률 48%

시장에선 패키징 장비 전문 업체가 계속 커질 것이란 긍정론이 우세하다.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패키징 장비 시장은 지난해 410억달러(약 57조원)에서 2028년 610억달러(약 85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간 성장률은 48.7%로 일반 장비(전공정) 시장의 성장률(35.8%·950억달러→1290억달러)을 웃돈다.

사업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주로 납품했던 한미반도체는 4월 마이크론에 226억원 규모 TC 본더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와도 거래를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된다.베시는 내년 양산할 예정인 HBM4에 적용될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와 관련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칩과 칩을 연결할 때 둥근 ‘숄더블’이 필요하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숄더블 없이 직접 연결해 배선을 줄이고 데이터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베시는 5월 한 대형 고객사에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26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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