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간병의 양립'까지 내건 日…"외국인 간병인력 22만명으로"

이민전쟁 최전방은 '외국인 돌봄인력'
일본 5대 종합건설사 다이세이건설은 지난 5월부터 간병 유급휴가를 15일로 5일 늘렸다. 일본 5대 전자제품 대리점인 에디온은 4월부터 부모를 간병하는 직원이 쓸 수 있는 간병 단축근무제 사용기간을 3년에서 ‘필요할 때까지’로 확대했다. 대형 가전업체인 후지덴키도 4월부터 일과 간병을 병행하는 직원은 무기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념조차 생소한 간병 휴가는 일본에선 법으로 보장된 권리다. 일본 정부는 2017년 간병휴업법을 제정해 가족 한 사람당 연간 5일(두 명 이상은 10일)까지 간병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다.저출산·고령화와 오랜 싸움을 벌이는 일본으로서 ‘일과 간병의 양립’은 우리나라가 저출생 대책으로 공을 들이는 ‘일과 가정의 양립’만큼 중요한 과제다. 간병을 가정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산업 활동을 좌우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2025년이면 일본 최대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 590만 명이 모두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된다. 65~74세인 전기 고령자 가운데 간병이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3%지만 후기 고령자는 23%로 급증한다. 2000년 218만 명이었던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는 2030년 9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때문에 2040년까지 일본은 지금보다 69만 명 증가한 280만 명의 간병인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2022년 간병인 수는 처음으로 6만3000명 순감소했다.

일과 간병의 양립은 간병 대란이 임박한 일본의 생존 전략이다. 간병 부담 때문에 직원이 일을 관두게 하느니 일과 양립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낫다는 인재 확보 전략이다. 일본 총무성이 5년마다 시행하는 취업구조기본조사에 따르면 2022년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간병 이직자’가 10만6000명으로 처음 10만 명을 넘었다.일본 정부가 눈을 돌린 분야가 외국인 근로자다. 일본은 2008년 경제연계협정(EPA)을 맺어 외국인 간병인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4만6000명의 외국인 간병인이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외국인 간병 인력을 22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우리나라 못지않은 저출산·고령화 속도에 신음하는 대만도 외국인 간병인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과 대만이 서둘러 외국인 간병 인력을 확보해 두려는 것은 이웃 중국의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2022년 출산율이 1.09명까지 떨어지면서 중국도 간병과 육아 등 돌봄 인력이 크게 부족할 전망이다.

‘인구 블랙홀’ 중국이 외국인 간병인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동아시아의 간병 자원이 씨가 마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지난 4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어 국제적인 간병 인력 쟁탈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한국도 2025년이면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1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치매환자와 독거노인은 각각 100만 명과 2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32년 우리나라에서는 38만~62만 명의 간병 인력이 부족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는 외국인 간병 인력 확보에 손을 놓고 있다. 한국은 서비스 조선 광업 임업 등 8개 업종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간병 분야는 제외돼 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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