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시를 읽는 사람들이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마을 사람들]

'쉬운 언어'로 돌아온 이서하
"모든 떠돌이 어른을 위한 시"

마음 연장

이서하 지음
현대문학
96쪽│1만2000원
'현대 시는 공감하기 어려운 데다가 난해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서하(32)의 시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과 난민, 동성애자 등 소수자 문제를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불편한데 매력적이다'는 반응이 절반, '해설 없이 읽기 벅차다'는 평이 나머지였다.

시인으로서 한층 원숙해진 걸까. 2016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어려운 시'를 고수해 온 이서하 시인이 쉬운 언어로 돌아왔다. 전작 <진짜 같은 마음>(2020), <조금 진전 있음>(2023)에선 볼 수 없던 일이다. 최근 3집 <마음 연장>을 출간한 시인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썼던 1·2집과 달리,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풀어냈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위험한 시집'
3집 &lt;마음 연장&gt;을 출간한 이서하 시인이 서울 석촌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시욱 기자
이번 시집은 '기만하는 습관'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동안 시인은 문학의 언어로 소수자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정작 난민의 삶이나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직접 경험해본 적 없었다. 자기 모습이 위선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긴 이유다.

이러한 심경 변화는 시집에 수록된 에세이 '기만한 습관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스스로를 기만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예상을 빗나가는 시를 쓰길 바라면서 정작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그래, 좀 모순적이지.""시인으로서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 지 확신 없이 지냈어요. 저의 무지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기로 했죠. 고집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쓰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소수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떠돌이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lt;마음 연장&gt;(이서하 지음, 현대문학, 96쪽, 1만2000원)
시인이 그동안 골몰해온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식은 건 아니다. '모두가 덜 춥고 불행했으면 좋겠는데'('알음알음')란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강경애 작가의 <인간문제>에서 영감을 받아 쓴 '뒤로 더 뒤로'는 상류층에 의해 유린당한 하층계급의 여성 이야기다.

세상에 맞서 싸우던 혈기 왕성한 화자는 어느덧 많은 부분에서 초연해졌다. 지켜야 할 게 많아진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화자는 마음에 응어리진 '그릇을 비우기 위해'('텅 빈 중심') 애쓰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 더러워서 피하지'('속으로 말하기')라며 부조리한 현장을 외면한다.현실을 비판하려는 의지와 대세에 편승하려는 태도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사이 전전긍긍하는 화자의 모습이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성장통일까. 시인은 "어른이 되기 싫다"고 말한다.

시집 제목의 '마음 연장'은 수록작 '집 연장하기'에서 따왔다. 지난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삶을 '연장'하는 존재는 난민뿐만이 아니다. '피터 팬' 같은 동심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를 애써 무시하며 살아가야 하는 '난민화된 어른들'의 표상이다.

"저의 시를 읽는 사람들이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삶은 연장되고 있으니까요. 계속 버티다 보면 언젠간 볕 들 날 오지 않을까요. 어린 아이한테처럼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소극적인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