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표준화 잰걸음…ISSB, ESRS·GRI와 기준 호환

한경 ESG 리포트

특정 기준 따를때
나머지 기준도 자연스럽게 활용

지속가능성 공시 정보
상호 운용성 획기적 개선 기대

기업은 글로벌 기준 준수와
EU 내 공시요구 동시 충족 가능
GRI 기준과도 상호운용 협력

한국도 ISSB 기준 준용
국내 상황에 적합한 기준 마련 예정
리처드 바커 국제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 위원이 국제 지속가능성 공시 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 제공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화 기관 두 곳이 공시에 관한 ‘상호운용성 지침’을 마련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작성에 범용적으로 활용되는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도 표준화 대열에 합류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중심으로 공시 표준화 작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5월 2일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과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은 ISSB 기준과 유럽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ESRS)을 동시 적용하는 데 필요한 ‘ESRS·ISSB 기준 상호운용성’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두 기준을 효율적으로 준수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중요성 판단, 공시 위치, 기후 외 주제에 관한 공시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두 기준을 원활히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상호운용성 확보 초석

두 기관은 이번 지침 발표로 지속가능성 공시 정보의 상호운용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간 지속가능성 표준화 기구는 소위 ‘알파벳 수프’로 불리는 기술과 표준이 난립하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협력해왔다. 공시 기준이 일부 달라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활용하려면 핵심 정보만큼은 표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이 발표한 이번 지침은 상호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특정 기준을 따를 때 나머지 기준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우선 중대성과 관련해 ISSB 기준은 재무 중대성(단일)을, ESRS는 이중 중대성 개념을 차용하고 있으나 ISSB 기준에 따라 재무 중대성으로 판별한 지속가능성 사안을 두 기준에 활용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

지속가능 경영에서 중대성은 기업 전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합리적 예상이 가능한,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 및 기회에 관한 중요 정보를 의미한다. 이중 중대성은 지속가능성 사안이 기업에 주는 영향(재무 중대성)과 기업의 경영 활동이 경제·환경·사회에 미치는 영향(임팩트 중대성)을 동시에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두 기준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으나 일정 부분 통합됐다.특히 기후 공시는 특정 기준을 준수해도 나머지 기준을 손쉽게 따를 수 있도록 1 대 1 색인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IFRS S2(기후 공시)에 따라 작성한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와 관련한 정보(TCFD 기반 정보)는 ESRS 1, 2 또는 기후(E1) 부문과 일치하는 공시 위치를 알려준다. 기후 공시의 핵심으로 불리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프레임워크와 관련한 정보가 상호 호환되는 셈이다.

이번 지침 발표를 계기로 기업은 비교 가능한 지속가능성 정보를 비용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침과 관련해 에마뉘엘 파베르 ISSB 의장은 “ISSB의 목표는 투자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비교 가능하고, 목표 지향적이며 의사 결정에 유용한 공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기업은 상호운용성 지침을 사용해 글로벌 기준을 준수하는 동시에 유럽연합(EU) 내 공시 요구도 충족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머레이드 맥기니스 EU 집행위원은 “이번에 발표된 지침은 EU와 국제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간 높은 수준의 일치를 보장하려는 약속을 환영한다”며 “EU 기업의 공시 부담을 줄이려면 서로 다른 관할권의 공시 프레임워크가 상호운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FRS 재단, GRI와도 상호운용성 협력

더불어 IFRS 재단은 ISSB 기준의 상호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GRI와의 협력을 강화한다. 5월 24일 IFRS 재단과 GRI는 시장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GRI와 ISSB 기준을 함께 사용할 방법을 찾고자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IFRS 재단과 GRI는 2022년 3월 맺은 양해각서를 기반으로 협력 관계를 강화해왔다. 2023년 11월 두 기관은 두 기준에 대한 기업의 접근을 개선하고 비용 효율적으로 정보를 산출할 수 있도록 싱가포르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 협력 강화 발표로 ISSB와 GRI를 개발·보급하는 글로벌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GSSB)는 각 기준에 필요한 공통 공시 사항을 식별하고 조정하기로 약속했다. 예를 들어 최근 발표된 GRI 101 생물다양성 기준과 ISSB의 생물다양성, 생태계 및 생태계 서비스에 대한 공시 개발을 연결하는 방식 등으로 협력한다.ISSB가 EFRAG와 상호운용성 지침을 발표한 데 이어 GRI 가이드라인과도 호환성을 높이기로 하면서 ISSB 기준은 명실상부한 지속가능성 공시 글로벌 기준선으로 자리 잡게 됐다. GRI 가이드라인은 2022년 기준 세계 매출 상위 250대 기업 중 78%가 채택한 공시 기준이기도 하다. 산업, 특정 주제 보고 기준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조화돼 있다. 생물다양성 외에도 인적자본 같은 차세대 공시 주제를 공동 개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ISSB, EFRAG, GRI가 상호 협력하는 가운데 한국도 ISSB 기준을 따른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4월 14일 수 로이드 ISSB 부위원장을 만나 “한국도 ISSB 기준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점으로 국내 상황에 적합한 ESG 공시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로이드 부위원장은 “ISSB 기준이 지속가능성 공시의 포괄적 글로벌 기준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 및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4월 30일 정례회의에서 ISSB 기준을 준용한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공개 초안을 의결해 발표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용 효율적이면서도 다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에 부합할 가능성이 큰 ISSB 기준이 주도권을 잡았다”며 “상호운용성이 개선되고 표준화가 이뤄짐에 따라 앞으로 기업들은 재무 중대성과 관련한 사항을 우선 공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ol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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