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의 카나리아' 백만장자들이 한국을 떠난다 [심형석의 부동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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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글로벌 투자 이민 컨설팅 기업 헨리&파트너스는 2013부터 다른 국가로 이주한 백만장자의 수를 나타내는 '헨리 개인자산 마이그레이션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백만장자란 100만 달러 이상의 가용 자산을 보유한 개인을 의미합니다.
살던 나라를 떠나는 백만장자는 2013년 5만1000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2023년에는 무려 12만명이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10년 사이 2.35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4년 잠정 수치와 2025년 예측치도 백만장자의 이주가 늘어날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2024년은 부의 세계적 이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지정학적 긴장, 경제적 불확실성, 사회적 격변이라는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백만장자들은 자신의 자산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올해 이주가 예상되는 백만장자는 12만8000명에 달해 지난해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백만장자들의 이주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떠나거나 새로 이주하는 국가는 미래 궤적에 광범위한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의 자산과 함께 전문지식, 네트워크, 역동성을 가지고 이주하기에 국가의 경제적 활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2024년 백만장자 유출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1만5200명의 순 유출이 예상됩니다. 2023년 1만3800명에서 계속 늘어나는 중입니다. 중국 경제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후로 중국의 부와 백만장자 성장은 둔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떠나는 백만장자들의 인기 이주지역으로는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가 포함되며 일본도 주목할 만한 이주지입니다.영국도 기록적인 유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9500명이 떠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목적지로는 파리, 두바이, 암스테르담, 모나코, 제네바, 시드니, 싱가포르 등이 있습니다.
인도는 4300명이 떠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보다 많은 신규 백만장자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더욱이 인도를 떠나는 백만장자들의 대부분은 인도에서의 사업상의 이익과 세컨드하우스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한국을 떠나는 백만장자의 수도 지난 몇 년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백만장자 유출은 2022년 400명에서 2023년 800명으로 두 배 늘며 7위로 올라섰습니다. 올해는 역대 최대인 1200명이 한국을 떠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중국과의 인구 차이가 30배 가까운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상황입니다.한국을 떠난 백만장자들이 향하는 나라는 호주와 캐나다 등입니다. 이들 국가는 상속세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율을 백만장자 유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백만장자들의 이탈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에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세금이 정상적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과세 표준이 30억원이 넘을 경우 50% 세율이 부과되는데 기업을 물려받으면 10%포인트(p)가 할증되어 60%로 높아집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일본은 55%, 프랑스는 44%, 영국과 미국이 각각 40%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캐나다와 호주 등 15개 나라는 상속세가 아예 없습니다.
국세청의 ‘2023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상속세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8년 2조5197억원에 그쳤던 상속세 결정세액은 2022년 삼성의 12조원을 제외하더라도 7조2000억원이 넘었습니다. 총조세 대비 한국의 상속세와 증여세 비중은 2.4%(2021년 기준)로 주요 7개국 평균(0.6%)의 네 배나 많습니다.상속세는 회사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회사가 인수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반기업 규제와 상속세 등으로 기업이 규모를 키우기 어려워지니 고용 여건이 악화하고 일자리 미스매치는 심각해집니다. 백만장자의 이주를 그들 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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