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포럼 "한경협 등 '이사 충실의무' 왜곡·가스라이팅"

8개 경제단체 의견서 반박…"정부·국회, 현명한 선택해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일반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놓고 재계가 반발하는 가운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5일 경제단체들의 주장을 '가스라이팅'으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포럼)은 이날 논평을 내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이 사실과 법리를 왜곡하고 호도하고 있다"면서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이 평균 30%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회사들이 외국 사례 왜곡과 경영권 위협, 기업가 정신 위축과 같은 가스라이팅에 몰두하는 것은 볼썽사납다"고 밝혔다.

앞서 한경협과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상법 개정안이 현행 법체계를 훼손하고 국제기준에서 벗어나며, 형법상 배임죄 처벌 등 사법 리스크가 막중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자본 조달이나 경영 판단 같은 일상적 경영활동에 큰 혼란을 초래해 기업 경쟁력을 저하하고, 경영권 공격 세력에 악용되는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럼은 6천자가 넘는 장문의 논평으로 경영계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은 주주 간 이해충돌 상황이 있을 경우 이사(회) 또는 지배주주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며 "8개 경제단체가 무슨 근거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글로벌 스탠더드 위배라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럼은 합병·분할·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일반주주들의 지분 가치 희석, 지배주주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사익편취·지배력 강화,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 등이 '주주 간 이해충돌' 사례에 해당한다고 언급하며 "규제에 실패한 법의 구멍을 막기 위한 기초로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돼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와 자본시장 정상화의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경영 불확실성이 증대된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주주 간 이해충돌이 있는 합병 등 거래에서는 그러한 거래를 하려는 이사가 절차와 조건에 있어서 완전한 공정성(entire fairness)을 증명하면 된다"면서 "지배주주와 관계있는 이사를 배제한 완전히 독립적인 이사회 산하 위원회를 구성해서 그 거래를 진행하게 하고, 주주총회에서도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모두 뺀 나머지 주주들의 과반수로 결정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행동주의펀드 등에 의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반박하며 국민연금·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활용한 주주가치 개선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행동주의가 투자자 보호를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지금 한경협 등의 의견은 마치 '지배주주가 곧 회사이니 다른 주주는 그저 따르라'는 주장으로 들린다"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대다수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선진 자본시장인지, 소수 지배주주를 위한 자본시장인지 명확하고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