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단식합니다"…위기 느낀 20대 결국 '파격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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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Z는 '도파민 피킹' 중
맹목적인 '도파민 추구' 지양하고
자신이 직접 '도파밍' 순간 선택해
"평일엔 유튜브, 주말엔 독서와 템플 스테이"
"도파밍 문화에도 MZ 특유의 주체성 반영"
'이동할 때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것',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울 때 스마트폰은 거실에다가 놓을 것', '대화할 때 모든 전자기기는 가방에 넣어둘 것.'
20대 여성 A씨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이른바 '도파민 단식 계획'의 일부다. 도파민 단식은 지속되는 자극에 익숙해진 삶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도파민 디톡스(해독)'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A씨는 "얼마 전 휴대폰이 고장 나 온종일 강제로 도파민 단식을 했었다"며 "자극에서 벗어나니 지금 일에 더 집중하기도 쉬워지고, 비는 시간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도파민을 스스로 조절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 6개월 동안 계획대로 최대한 실천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중추 신경계에서 기쁨, 쾌락, 재미 등 감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이제 일상에서도 익숙한 용어가 됐다. 도파민과 '파밍'(Farming)'의 합성어로 도파민이 분비될 만큼 재미있는 것을 좇는 현상인 '도파밍'은 이미 MZ 세대(198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 사이에선 핫한 트렌드다. SNS와 방송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면 "도파민 터진다"란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도파민 피킹(Picking)'에 대한 관심도 이에 못지않다. 도파민 피킹이란 도파민을 무조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도파밍과 반(反)도파밍을 선택하는 소비 행태를 의미한다. 이를 실천하는 이른바 '도파민 피커'들은 숏폼, 단 음식 등 도파민이 터지는 소비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이를 멀리하면서 도파밍의 순간을 직접 '픽'한다.
무조건 도파민 추구는 'No'…"가끔 '반도파밍'도 매력적"
스마트폰을 통한 유희가 도파밍이라면, 대표적인 반도파밍은 바로 독서다. 충남 천안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민석(28)씨는 평일 퇴근 후엔 꼼짝도 하지 않고 틱톡, 유튜브 쇼츠 등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주말이면 소위 '분조카'(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즐긴다.김씨는 "친구에게 독서를 권유받고 주말 중 하루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며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 그 매력을 알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유튜브를 볼 때와는 다른 의미로 기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책벌레가 된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도 퇴근 후엔 독서가 아니라 유튜브 시청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 영국 매체 가디언도 '독서는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란 눈길을 끄는 제목으로 "Z세대가 다시 종이책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독서율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20대는 74.5%로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다. '템플 스테이'도 도파민 피킹 중인 MZ 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이들은 서울 조계사, 봉은사는 물론이고 수도권 내 가까운 사찰에서 전통적인 한국 불교를 체험하며 잠시 도파민에서 벗어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2030 세대의 비중은 2019년 32.1%에서 지난해 40.7%로 늘었다. 2019년 이전까지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던 4050세대(27.5%)를 뛰어넘은 수치다.
올해 3월 친구와 함께 템플 스테이를 다녀온 B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도파민에서 제대로 벗어나는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B씨는 서울 도심에서 벗어나면서도 교통이 좋은 경기 남양주시 봉인사에 템플 스테이를 신청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일부러 1박 2일 동안 스마트폰을 끄고 지냈다. 산책과 명상, 스님과의 대화 등 모든 순간이 진정한 휴식이라고 느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도파민 피킹의 가장 큰 장점은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따로 가지면서도, 도파밍 자체를 놓진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바로 '디지털 디톡스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사용자는 해당 앱을 통해 사용하기 원하는 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일정 시간 동안 열리지 않게 설정할 수 있다.NHN데이터의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디지털 디톡스 앱의 설치 횟수는 1분기 대비 64%나 뛰었다. 현재 100만명이 다운로드 받은 한 앱에는 "이 앱을 깔고 잠을 푹 자게 됐다", "디지털 디톡스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앱을 통해 유튜브를 잠시만 잠가도 주변이 다르게 보인다" 등 사용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MZ 세대의 주체적인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도파민 피킹은 숏폼, 유명 여행지 등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이뤄지던 도파밍 문화에 '주체성'이 가미된 것"이라며 "MZ 세대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성과를 확인하는 것에 익숙하다. 도파밍 문화를 맹목적으로 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파민을 조절할 때 가장 효능감이 높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