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0만원 준대서 동남아 갔는데…"너 납치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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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들 범죄자로 만드는 '동남아 취업사기'
20·30대 취업준비생에 접근
고액 연봉 준다며 유혹한 뒤
현지 도착하면 여권 뺏고 감금
보이스피싱 등 범죄 가담시켜
피해자 수 1년새 23배 급증

지난달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자마자 휴대폰 화면에 뜬 한국 영사관의 문자메시지다.해외 취업자가 늘면서 이를 이용한 취업 사기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국경 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인 피해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최근에는 캄보디아 취업 사기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사기 피해자가 범죄자로 전락
“온몸에 문신한 한국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게 눈에 띄게 늘었어요. 전에 없던 모습이라 교민사회에서도 불안감이 큽니다.”캄보디아에 주재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가 한 말이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취업 사기는 높은 급여와 좋은 근무 여건으로 청년 구직자를 현혹해 현지로 입국시킨 다음 휴대폰 유심칩 교체와 체류 기간 연장을 이유로 휴대폰과 여권을 빼앗고 감금하는 방식이 많다.
감금된 이들은 주로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불법 주식 리딩방, 도박 같은 불법적 일을 한다. 이를 거부하면 여권을 돌려주지 않거나 과도한 항공료와 숙박비를 청구한다. 대다수 피해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사기 범죄 공범’으로 전락한다.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구인 공고가 늘어난 것도 문제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이 시쳇말로 ‘낚이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캄보디아 취업 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20·30대였다. 현지 경찰에 신고해도 단속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 한 교민은 “보이스피싱 범죄 단체는 통화량이 유독 많기 때문에 위치를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이들이 현지 경찰과 결탁해 단속이 어렵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엉성한 수법에도 낚인 절박한 청년들
지난해 7월 채용 사이트에서 ‘하루에 25만원 아래로 버는 날이 없다’ ‘재택근무’라는 채용 공고를 보고 연락한 B씨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인사 담당자’ 요구에 따라 주민등록증 사진을 SNS로 보냈다. 이렇다 할 면접 절차도 없이 곧바로 채용됐다며 원격 지시를 받아 시키는 일을 하던 그는 갑자기 나타난 잠복 경찰에게 체포됐다. 그제서야 자신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금전 전달책이었음을 알았지만 B씨는 사기 방조범으로 기소돼 4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국내 취업 사기는 주로 ‘현금 지급’ ‘단순 업무’임을 강조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 취업 사이트에 의뢰해 국내 취업 사기 광고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단순 포장 알바’ ‘당일 현금 지급’ ‘서류 배달(전달)’ ‘온라인 주문 작성 알바’ ‘초보 부업 가능’ 등이 가장 많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정상적인 회사처럼 채용 절차를 밟다가 채용 비용 등 별도 금전을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자리가 필요한 지원자들이 마지못해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응하는 일이 많다”며 “채용 비용 등을 구직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현행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고, 사기일 확률도 매우 높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놈펜=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