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폭염 정전' 비상…산유국 쿠웨이트 단전·英공항 대거 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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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량 폭증 못버티는 전력망
세계 각국 전력 인프라 노후화
폭증하는 전기 수요 감당 역부족
정전 경제손실 年1000억弗 달해
대만 반도체 생산도 위협 받아
교통망 마비, 공장 가동도 위협
24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폭염이 덮친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등의 주요 지역에서 전력 과부하로 한때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정전으로 지난 21일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 등에서는 신호등이 고장 났고,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는 물 펌프가 가동을 멈췄다.산유국인 쿠웨이트는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따라 20일부터 순환 단전을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 최대 2시간씩 일부러 전력 공급이 끊기도록 했다. 3개월 단기 계약을 맺고 오만과 카타르 등 인접국에서 전기를 수입하고 있지만, 폭염에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탓이다. 일부 지역의 기온이 50도 가까이 치솟은 이집트에선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힌 이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전이 잦아지면서 화상 회의 중 노트북이 꺼지는 사태가 빈발하고, 직장인들은 정전 예고 시간을 피해 퇴근을 서두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파키스탄에선 대도시에서도 정전이 일상화되고 있다. 정전 때문에 냉장고를 돌리지 못해 음식점들이 음식물을 폐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에콰도르에서는 지난주 20년 만에 전국적인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낙후된 전력 시스템과 에너지 위기가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력난은 산업체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18일 대만에선 네이후 과학단지 일부에 전기가 끊겼다. 이 단지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조업체 엔비디아의 대만 지사와 폭스콘 등 30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추가 연구개발(R&D) 센터 건립과 관련해 “대만의 전력 개발(현황)이 향후 난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지 약 열흘 만에 우려가 현실화됐다. 지난달 베트남에서는 정부가 대만 폭스콘에 “전력 소비량을 자발적으로 30% 줄여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교통망도 위협받고 있다. 23일 영국 맨체스터 국제공항에서는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항공편 100여 편이 무더기 결항됐다. 전원 케이블 고장이 원인이었다. 전력은 반나절 만에 복구됐지만 결항으로 인한 파장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망, 지금보다 배 이상 필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작년 말 발간한 전력망 보고서에서 “전력망이 세계 에너지 전환의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며 투자 확대를 촉구했다. 이어 “2040년까지 현재 세계 전력망 길이에 해당하는 8000만㎞의 전력망을 추가하거나 교체해야 한다”며 “전력망 개발이 지연되면 정전 등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정전에 의한 경제적 비용은 이미 연간 약 100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0.1%에 해당하는 규모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