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텅텅, 호텔 건물은 매물로…'살기좋은 도시' 세종의 눈물

균형발전 도시설계의 역설

생활권 분산에 중심상권 부재
백화점·종합병원 못 들어서며
상가 공실률, 전국 평균의 2배

차없는 도시 철회로 교통정체
39만명 도시에 택시 400대뿐
지난 3월 매물로 나온 정부세종청사 앞 4성급 호텔 전경. 황금상권의 입지에도 25일 현재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종청사 남쪽의 세종파이낸스센터(오른쪽 사진) 역시 대부분 비어 있다. 정영효/황정환 기자
지난 3월 세종시의 중심가인 정부세종청사 앞에 있는 4성급 B호텔이 입주한 건물 전체가 매물로 나왔다. 작년 5월 외국계 4성급 호텔이 문을 열기 전까지 세종시의 유일한 호텔이었다. 세종 중심가의 황금상권이라는 입지 메리트가 있었지만 25일까지 네 차례 매각 입찰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세종시의 랜드마크 상가인 ‘세종 엠브릿지’도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매각 작업을 했지만 모조리 유찰됐다. 2433억원으로 시작한 매각가격이 마지막 유찰 땐 1293억원까지 떨어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고 하는 ‘계획도시’ 세종시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 3일 한국지역경영원의 ‘2024년 대한민국 지속가능한 도시 순위’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평균연령(37.7세), 상용직 근로자 비중(86.7%) 등 인구와 소득, 재정 면에서 최상위 수준을 보인 결과다. 2012년 출범 이후 12년 만에 인구 39만 명의 중견 도시로 성장했지만, 한쪽에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지역 상권 붕괴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부동산원의 올 1분기 지역별 상가 공실률 조사에서 세종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8%로 압도적인 1위다. 전국 평균 13.7%의 두 배에 달했다.

전국 소득 수준 5위인 도심 상권이 무너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도시 설계의 실패를 지목한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도심을 중심으로 부도심과 주택가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세종은 일반적인 이런 도시와 달리 계획됐다. 도시 정중앙에 자리한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이상 예정지), 정부청사 등을 중심으로 6개의 분산된 생활권을 도로로 연결하는 환상형 도시로 기획됐다. 이로 인해 인구 39만 명이 한데 모이는 중심상권이 형성되지 않고 6개 중소형 생활권이 분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백화점, 종합병원, 학원가 같은 대형 상업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배경이다.

애초 ‘자동차 없는 도시’로 시작했다가 중도에 이런 계획이 철회되면서 ‘자동차 없이는 안 되는 도시’가 된 후유증도 심각하다. 간선급행버스(BRT)와 자전거에 중점을 둔 도로 인프라가 깔리면서 도심의 주요 간선도로조차 왕복 4차로에 그친다.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대가 되면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진다. 주유소 같은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종시 출범 2년6개월이 되도록 세종시엔 주유소가 한 곳도 없었을 정도다. 택시는 지금도 400대뿐이다.세종시보다 인구가 작은 강원 원주시(36만 명) 택시의 5분의 1 수준이다.

송우경 산업연구원 지역균형발전연구센터 소장은 “세종시가 이중 목걸이형 도시 구조로 균형과 분권을 강조하다 보니 중심성이 약한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정영효/황정환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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